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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Feb 26. 2018

당신의 숲은 안녕한가요.

<리틀 포레스트> 누구나 저마다의 숲이 있어요



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움츠러든 몸과 영혼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했다. 생기 없이 부스럭거릴 뿐인 나에게 영양분을 주어야 했다. 영혼의 움틈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기지개가 ‘리틀 포레스트’였다. 


퇴근은 6시 반이다. 업무를 마무리 한 뒤 종로에서 신촌까지 이동했다. 떡볶이와 김밥을 급하게 밀어 넣은 뒤 상영관에 도착했다. 엉덩이를 붙이고 코트를 벗자마자 영화가 곧바로 시작됐다. 후.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스크린에서는 초록색 녹음이 가득한 장면을 뚫고 혜원이 등장한다.  


 

배가 고파서 

혜원(김태리)은 자신이 서울에서 내려온 이유가 ‘배가 고파서’라고 말한다. 돌덩이 같은 편의점 도시락은 상했고 고시원 냉장고는 빈곤했다. 서울인의 일상을 대변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허기가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허기를 채우지 못한 채 흰 눈이 내린 집으로 돌아온다. 배고팠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대부분의 일과를 맛있는 요리를 해 먹는 걸로 채운다.

누군가 그랬다. 요리는 삶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의지라고. 끼니마다 정성 들인 재료로 요리를 하는, 그리고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그녀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는 얼마나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는가. 영화관에 들어가기 10분 전에도 나는 떡볶이와 김밥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때웠다. 돌이켜보니 오늘 아침도, 저번 주도 그랬다. 살기 위해 먹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혜원은 천천히,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온전히 먹는다. 그녀는 소울푸드를 통해 육체적 허기를 채우고, 영혼의 배고픔 또한 다독인다. 



 

엄마 

모든 것을 회피하고 고향으로 떠나왔지만, 잘 먹으면서 살고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도 혜원은 반드시 직면할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요리를 할 때마다 떠오르는 '엄마'다. 그녀에게 엄마는 우주, 세상 모든 음식을 만든 창조주였다. 혜원은 내면을 단단히 만들수록 엄마와 필연적으로 닮아있는 자신을 만난다. 그러면서 홀연히 떠난 엄마를 이해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엄마를 미워함과 동시에 사랑한다. 닮던 닮지 않았던, 내 여성성의 기초를 형성하고 뿌리내리게 했던 사람. 가족이 매일 둘러앉는 식탁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준 사람.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친구랑 싸웠을 때, 절망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알려준 사람. 그건 다 엄마한테 보고 배우는 거니까. 오해와 미움에서 해방되어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 모든 딸들은 자신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항해의 키를 잡는 것은 바로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넘어서는 것. 혜원은 엄마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나의 작은 숲 

혜원이 시험을 마무리 지었는지, 재하(류준열)는 사랑을 고백했는지,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돌아왔는지. 영화는 모든 결말을 함구한다.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은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뿐이다. 여름엔 싱그러운 토마토가 날 수 있게 가꾸고, 태풍에 상처받은 마음을 단단히 추스르다 보면 어느새 곶감의 맛이 깊어지는 시간이 온다. 그러다 보면 어제의 나보다 한 발자국 더 용기가 생긴 나를 수확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삶 또한 바뀐 것이 없다. 나무는 여전히 앙상하고 지하철 사람들은 빽빽하다. 오늘 저녁도 토스트로 때웠다. 그렇지만 하나 싹을 틔운 것이 있다면, 겨우내 멈춰있었던 글 쓰는 행위를 재가동한 것. 양배추 튀김처럼 바삭하진 못하더라도 꼭꼭 씹어먹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혜원에게 요리가 생명력의 시작이라면, 나에게는 글쓰기가 영혼에 물을 주는 행위였다. 

영화에서는 '아주 심기'라는 말이 나온다. 싹이 튼 식물의 거처를 더 이상 옮겨 심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토양에 완전하게 심는다는 뜻이란다. 글을 쓰지 못했던 나의 겨울이 정체된 시간이 아니라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울에 푹 쉬고, 봄에 펼 기지개를 위해 준비하는 것. 글쓰기는 나를 찾는 시간이다. 혜원이 고향에서 요리를 하고 밭일을 하며 자신을 만났 듯, 나도 글쓰기를 통해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작은 숲을 온전히 만나는 시간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안녕하세요. 저 정말 오랫만에 왔지요! 이제 정말 나의 작은 숲이 울창해지도록 글을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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