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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Apr 17. 2017

나의 사랑 그리스

결국 사랑은



* 반드시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언제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다프네도, 지오르고도, 마리아도 사랑에 빠졌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사랑을 다루는 이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결코 사랑스럽지 않다. 오히려 불안과 긴장감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거 같이 위태롭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제시하는 사랑의 전제는 만족스럽진 않지만 익숙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는 현실의 문을 열고 나와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칼 날에 찔린 듯한 고통이 잉태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름다운 그리스인. 지금 처해있는 사랑의 결말이 핑크빛이 아닐지라도 그들은 사랑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행복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다.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결국에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던 그들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독선적인 가장이 가정을 유지하는 방식 때문에 가족들은 지쳐있었다. 자신의 삶이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의 대상을 찾고 있던 그는 경제공황이 온 그리스에 설상가상으로 닥쳐 드는 시리아 난민들을 타파하고자 한다. 불법적인 난민의 피난에 불법적인 파시즘 행태로 보복한다. 그런 그의 삶의 방식에 휘둘린 가족들은 불행해도 행복한 척을 해야 하며 옳고 그름의 잣대에 평가당하면서 마지못해 가정을 지켜야 했다.





부메랑

이 영화가 제시하는 사랑에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진 에피소드가 이 에피소드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그들은 이어질 수 없었다. 그리스인과 시리아인이라는 설정부터가 그랬고, 대학에서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다프네와 길거리에서 불법적 물품을 파는 파리스의 삶이 그랬고,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파시스트라는 비극이 그랬다. 젊음의 시기에는 앞뒤 보지 않고 불같이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책임의 무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랑의 결과는 어린 두 사람에게 너무하리만치 가혹했다.





로세프트 50mg

지오르고에게는 의무가 많았다. 사랑하는 아들의 아빠 노릇, 잠자리를 가지지 않는데도 남편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허울뿐인 부부, 대규모 구조조정 앞에서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까지 책임져 달라 하는 친구. 지오르고를 옭아매는 의존적 관계 때문에 그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엘리제를 만났다. 아름답고 자존적인 그녀 앞에서 지오르고는 사랑을 느낀다. 엘리제도 유쾌한 남유럽 남자인 지오르고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랑의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정서는 불안과 긴장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지오르고와 엘리제의 사랑도 비극적인 구도 안에서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엘리제는 그리스를 떠나면서 지오르고가 먹었던 약을 똑같이 먹음으로써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상대의 아픔까지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일 수 있다. 





second chance

평생을 가족의 식사를 차려주다 보니 어느새 장년이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지적인 독일인 세바스찬이 알려주는 지식과 겸손한 사랑에 빠져든다. 이미 손주까지 본 할머니는 신사가 주는 사랑 앞에 소녀가 되고 만다. 60살 정도 되면, 인생의 황혼을 맞는 시기에는 그러려니 하고 사는 줄 알았다. 안정된 환경을 떠나기엔 너무 오래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될 법도 했다. 그러나 자주적이며 사랑을 아는 그리스인은 결국 운명적 사랑 앞에 서게 된다. 





에로스와 프니케

신화 속에 나오는 에로스와 프시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조건이 충분했다. 에로스는 신이었고 프시케는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로스가 가진 신의 힘과 프니케의 호기심 때문에 둘은 긴 시간을 돌고 돈다. 때로는 강점이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사랑에는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애틋했고 결국 신화가 되었다.


사랑의 세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만족스럽진 않지만 익숙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는 현실의 문을 열고 사랑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영화의 세 파트에서 각각 살아가다 결국 하나가 되는 그들도 그리스인의 방식대로 사랑에 도달했다. 삶이 공황상태이고, 정부가 그들을 옭아맬지라도.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충실히 사랑한다.





어쩌면 나의 사랑 그리스의 전개 방식이 우리의 사랑의 순서일지도 모른다. 젊음은 결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다가 사랑의 대가를 치르고 만다. 그때의 교훈으로 우리는 잠잠히, 현재에 충실해서 살아가지만 중년의 시기에 불가항력으로 이끌리는 사랑에 손쓸 방도가 없이 끌리게 된다. 그리고 장년,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살다가 삶과 충돌하는 강력한 사랑을 만나고 만다. 사랑에 울고 웃고, 밤을 지새우며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은 우리를 치유한다.





두 번째 옴니버스의 주인공인 지오르고는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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