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보이

by 윤지영

세상은 두 부류로 나뉜다. 문신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 나는 후자에 속했지만 전자에 속한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얼마 큼의 용기가 있어야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걸까. 문신은 어떤 의미를 영원히 가지고 살겠다는 포부와도 같아 보였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어서 탐나는 마음이었다.



지인 중 첫 번째로 문신을 한 사람은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홍대의 타투샵에 가서 문신을 의뢰했다. 며칠 뒤 만난 그는 팔뚝 위에 주먹보다 큰 눈을 새겨왔다.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눈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오른쪽 눈을 확대해서 팔에 새긴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정해진 개수의 눈코입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친구는 자신의 힘으로 눈 하나를 더 만든 것이다. 그 후로 제3의 눈을 보고 있자면 때때로 내 마음까지 꿰뚫어지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여러 친구들이 몸에다 유일무이하고 강해 보이는 상징들을 새겼다. 그들이 부러워 이따금 나도 홍대로 달려가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태생이 우유부단하고 좋아하는 것이 수시로 바뀌는 나로서는 내 몸에 평생 새겨질 상징을 결정하는 것이 꽤나 신중을 기하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내 문신에 싫증이 날까 봐 아직까지도 나는 문신을 안 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나처럼 동생 또한 십 대 때부터 문신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깡 경상도 핏줄이 흐르는 보수적인 아빠는 딸들이 귀 뚫는 것도 쉽사리 허락하질 않았기 때문에 문신은 정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시간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말처럼, 서른 살이 되어 철이 든 건지 혹은 보편적인 것에 순응하며 살게 된 것인지 문신을 동경했던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었다. 남들이 안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에 동의가 되기도 했고, 후회 많은 인생에서 후횟거리를 하나라도 줄인 것이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문신을 했었던 친구 중 다수가 지금도 레이저 시술을 받으며 문신을 지우고 있다.) 문제는 나와는 달리 동생의 열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동생이 기어코 문신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카톡을 보내왔다.



몇 년 전 동생을 그려준 적이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림을 받아 든 동생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연신 자기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청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걸 잊지도 않았는지 첫 번째 문신 도안으로 그 그림을 가져갈 거라고 했다. 그러라고 그려준 그림이 아닌데, 그걸 잊지도 않은 동생이 좋기도 하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동생도 내년이면 서른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아서 후회하지 않으며 사는 것처럼 동생도 후회할 것이 없었으면 싶었다.



'철든' 나는 휘성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엄밀히 따지면 동생과 동갑이지만 한국에만 있는 '빠른 년생 문화'로 인해 한 살 많은 형부가 되었다. 우리 둘 다 동생과 1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녀를 훨씬 어리게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를 대하듯, 걔가 정말 문신을 하면 어떡하냐고 둘이서 심각하게 토론을 했다.



며칠 뒤 우리 집에 온 동생은 문신을 보여주겠다며 팔을 걷었다. 나는 정확히 1년 후에 후회할 거라고 확신하면서 망한 동생의 인생을 상상했다.



"언니. 이거 봐봐."


아니 근데, 나의 기우와는 다르게 동생의 문신이 너무 귀여웠다. 말도 안 되게 트렌디하고 몹시 개성적이라고 느껴졌다. 제3의 눈을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신선 함이었다. 나의 확신은 자주 그 길을 돌이켰고 이번에도 감탄사를 내뱉으며 확신을 엎어버렸다. 어쩜 이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문신을 했냐며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녀를 칭찬할 내 모습이 그려졌다. 옆에서 보던 휘성이의 마음도 움직였는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근데 사실 나도 문신을 하고 싶긴 했어. 멋있잖아."


우리 부부의 태도는 동전 뒤집듯 아름다움에 빠르게 탐닉되었다. 갑자기 문신만이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의 반증이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순식간에 앞으로 어떤 문신을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동생이 보기에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습게 보이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우스운 일이 반복될수록 인생은 시트콤처럼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휘성이는 미국을 좋아했다. 햄버거, 미군의 잠수함, 백악관, 심지어 성조기까지 미국에 관한 모든 것에 열광했다. 넷플릭스를 시청하게 되면서부터는 각종 미드와 영화를 섭렵해나갔다. 어느 날은 그가 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영화를 보고 있었다. 마초냄새나는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영화였다. 마침 등장한 흑인 배우가 손가락 마디에 F.O.O.L(멍청이)이라고 문신을 새긴 것을 보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며칠 전 문신에 열광했던 우리가 떠올랐다.



우리가 문신을 하게 된다면 어떤 문신이 좋을까? 뭐든 과한 건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이다. 동생의 문신도 판박이 스티커처럼 귀여웠기 때문에 더 멋져 보인 것처럼 말이다. (종종 그의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동생의 팔을 문지르며 이 판박이는 오래간다고 말하고는 한댔다) 나는 휘성이 손을 내쪽으로 끌고 와 볼드한 명조체로 손 마디마디에 펜으로 글자를 새겼다.


L.E.M.O.N


영화에 집중해서 신경 쓰지 않던 그가 완성된 문신을 보더니 팽하고 웃었다. 두꺼운 그의 손과 레몬이 가진 이미지가 마디 위에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강렬하지만 조금 우스운 레몬이 그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마초적인 폰트로 휘갈긴 단어가 겨우 레몬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손가락으로 화가 난 레몬, 수줍은 레몬, 단정한 레몬 등을 연기했다. 이렇게 쿵짝이 맞는다면 정말 마초 레몬을 영구적으로 새긴다고 해도 그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삶의 작은 순간은 나를 가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친구의 팔에 새겨진 눈을 보고 마음을 간파당한 나를, 어떤 문신을 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를. 동생이 가져온 문신 해프닝은 이렇게 지나갔고 나는 앞으로도 문신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추억이 소환되고 과거가 현재와 섞여 지금의 내가 충분히 행복해졌다. 먼 훗날 생각해도 웃음이 날 작고 소박하고 귀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