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손길이 닿지 않아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책상 같은 이곳에서 괜히 안부를 전해봅니다. 오랜만이에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브런치 앱을 꺼둔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제 인생에 가장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탄 것도 아닌데 속이 울렁거리느라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읽지도 못했고요. 아기를 낳고서는 더더욱 그럴 시간이 없었는데요. 이러다가 나의 한 부분을 영영 잃을 것 같아서 새벽 수유를 마치면 곤히 잠든 아기를 내려놓고 필사적으로 책을 펼치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며 작가 흉내를 조금 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그들의 글을 읽으며 이제 나는 독자의 자리에 남게 되겠구나 하고 마음이 내려놔지더라고요. 조금 아쉽기는 했는데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글을 써야 한다는 시달림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란!(ㅎㅎ) 정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습니다. 대신 아기가 와앙 울며 단 잠을 깨우지만요.
그러다 아기가 곤히 잠든 밤, 불현듯 마음이 동하여 이 공간을 방문했어요. 무려 21년 2월의 글이 마지막이었네요. 브런치에 썼었던 연애와 사랑에 관한 글에 꾸준히 라이킷이 달리고 간혹 구독 알람이 울려도 그때의 나는 지금 여기에 없다는 이유로 이 공간을 방치했던 게 이제야 마음에 걸리네요.
나의 어떤 시절은 막이 내렸고, 당분간 제 인생에 가장 큰 존재인 아기와 둘이 조용하고도 소란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눈 감았다 뜨면 자라 있는 아기가 아까워서 하나 둘 써 내려간 짧은 편지를 가끔씩 책상 위에 올려두겠습니다. 그 편지는 아기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저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애달픈 마음으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결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중한 것을 떠올리고 싶을 때 들러주세요.
내일은 공휴일이네요! 많은 분들이 늦잠을 주무시거나 어디론가 떠날 계획에 마음이 부풀어 있으실 테죠. 육아에는 휴일이 없어서 저는 여전한 방식으로 내일도 아기가 내는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육아는 매일이 홀리데이 같기도 하더라고요. 해사하게 웃는 아기의 얼굴과 이제 막 기기 시작해서 식탁 의자를 야무지게 핥아먹는 모습을 볼 때면 휴일에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저와 구독자 여러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현재를 귀하게 여기는 나날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평안한 밤 보내세요. 좋은 꿈 꾸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