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물건을 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산다. 남편은 신발이 스물여섯 켤레나 있는데도 또 신발을 사려하고 아이는 장난감이 충분한데도 지나가다 새로운 장난감이 보이면 사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되새기는 기억이 있다.
어느 화창한 날 아파트 커뮤니티에 사진과 제보 글이 올라왔다. 창 밖에서 아이가 장난감을 던진 것 같으니 어서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화단에는 하얀 토끼 인형을 비롯해 형형색색의 장난감들이 불시착해 있었다. 묘하게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무구한 눈동자로 사물을 훑고, 과감하게 온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존재. 내가 기억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그랬다. 새롭게 이사한 아파트에는 늘상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떼 부리는 소리, 저기서는 킥보드 타며 질러대는 고함이 일상이었다. 장난감 불시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귀여운 에피소드로 여기며 대화방을 나왔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을까. 선물 받은 공룡 장난감이 집안 어디에도 보이질 않아서 두리번거리던 찰나 쎄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때 화단의 토끼와 공룡… 우리 집 거랑 똑같은 걸 보니… 우리 거…였네?!
시간을 거슬러 사건 현장을 복기해 본다. 그날 집에는 우리 애를 비롯해 여러 미취학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연령대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공간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하며 큰 충돌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놀았다. 누구는 레고를 하며, 또 누구는 공룡 놀이를 하며. 그런 기류에 휩싸여 우리 아이도 또래 친구와 무난하게 놀았다. 어른은 어른들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시간을 보내는 나름 성공적인 공동육아였다.
아이들 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특별한 아이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 아이의 엄마가 했던 말도 번뜩 떠오른다. 그날 집에 가는데 우리 애가 자꾸 주차장이 아니라 현관으로 가려고 하더라고요. 혹시 창 밖으로 물건을 던졌을까요? 잃어버린 장난감 없나요?
나는 꽤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물건은 없다고 명쾌하게 결론 내렸다. 왜냐하면 없어진 물건이 정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방에 교구장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 우리 집 정리 스타일은 물건의 자리를 정해두는 것이 아닌 교구장 안에만 두면 된다는 주의라 물건의 행방을 그다지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다. 아이라도 행방이 묘연해진 장난감을 찾았더라면 좀 더 유심히 살펴봤을 텐데 아이조차 자기 장난감 중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 눈치였다.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 장난감들이 사라진 지 3주 뒤에나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건에 대한 일말의 집착이 남아있던 나는 비로소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게 되었다. 오히려 어떤 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장난감의 낙하. 물건으로부터의 해방.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 것. 필연적으로 그리 될 것.
더 이상 새 장난감들이 아깝지도 않았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장난감을 두고 크고 작은 실험을 하게 되었다. 최근 아이가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숨겨보는 거다. 꽤 여러 차례 반복한 그 실험의 결과값은 늘 같았다. 아이는 단 한 번도 없어진 장난감을 찾기는커녕 부재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허탈함과 동시에 스믈스믈 기쁨이 몰려왔다. 해당 실험으로 얻게 된 결론은 하나. 나처럼 아이도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생의 여러 전환점(https://brunch.co.kr/@noowhy/221) (https://brunch.co.kr/@noowhy/222)을 맞이하며 소유보다는 경험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 내 삶의 관점을 아이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남편의 DNA도 물려받았으니까 남편처럼 신발이 스물여섯 켤레나 있는데 또 가지고 싶어 하는 물욕이 강한 타입일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아닌 걸로 판명 난 것이다! 혹여 맞다 할지라도 지금부터 무소유의 길로 길들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사라진 장난감 중에는 토끼인형도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애착인형으로 삼는 토끼였다. 선물로 받은 건데 아이는 토끼보다는 엄마를 더 애착 삼아 애착인형으로서의 쓸모는 없었다. 다들 애착물건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었는데. 우리 애의 경우 애착 물건 또한 없어도 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건 마치 모유수유 같았다. 젖병, 온수, 분유 다 필요 없고 엄마만 있으면 되는! 가뜩이나 엔트로피가 가득한 육아의 영역에서 조금은 심플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웃음이 실실 나왔다.
육아인들이 얼마나 많은 ‘개월수별 육아 필수템’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는지. 국민장난감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의 생소함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분명 국민 중 하나인데 나는 모르는 국민장난감의 세계. 그 안에 소속되어야 알맞은 육아를 비로소 하는 것 같은 마음. 그래서 국민 장난감을 몇 들였다. 후에야 저명한 전문가들에 의해 오히려 화려한 효과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나는 그 아이템들이 아이에게 과자극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차 싶었다. 이 시장, 잘 판다. 잘못하다가는 눈 뜨고 코 베이겠다.
국민장난감이란 아이를 위한 필수템이 아니라, 어쩌면 육아 시장이 돌아가기 위한 필수템이 아닐까? 매번 새로운 것을 제공해 줄 필요, 전혀 없다. 아이가 지루해하면 주방의 실리콘 국자나 냄비를 슬쩍 두드려 보는 거다. 아이의 눈이 반짝이며 난타 못지않게 사방팔방을 쿵짝쿵짝 두드리고 다닐 거다. 국민템보다 훨씬 더 재밌게 가지고 놀 것이다.
물건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아이가 언젠가 가지고 놀지도 모른다는 바램으로 언제까지나 장난감들을 데리고 있고 싶지도 않다. 계절별로 화단에 불시착한 솔방울이나 낙엽을 줍고, 철이 지나 그런 놀잇감이 사라지면 또 함박눈을 가지고 노는 게 훨씬 낭만 있다. 그렇게 키울 것이다.
다만 남편에 한해서는 그의 기쁨을 존중해주려 한다. 기쁨의 종착역이 꼭 같을 필요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