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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꽃을 꺾습니까

존재와 소유

by 윤지영

"아까. 길 걸어가는데 들판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거야. 금국화였던 거 같은데 봄처럼 화사했어. 그 왜, 사람들에게 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중에 꽃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 가을인데도 예쁘더라 꽃이! 싱싱하고. 계속 봤어. 이걸 꺾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근데 결론은 그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리에서 영양분을 온전히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뽑는 순간 뿌리와 분리된 꽃이 얼마나 그 아름다움이 지속될까 싶기도 하고."


"소유와 존재의 관점으로 말할 수 있겠지. 소유해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 그것의 환경과 위치와 있는 그대로를. 온전하게 보는 것이 대상을 진정 사랑하는 거야. 결국 내가 가지지 못한대도 말이야."


"그래서 꽃 안 꺾고 그대로 발길을 돌렸어. 꽃의 존재 이유가 아름다움, 즉 누군가의 마음에 꽃이 되는 거라면 나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게 꽃에게도 좋을 테니까."


"마음의 꽃이라니. 시 같다. 네가 꽃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나도 얘기할래."


"해줘. 이런 이야기는 공유하는 게 좋아."


"벚꽃을 보며 설레는 감정들은 23살 때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는 그런 감정이 없었단 말이야. 그냥 꽃이네. 금방 만개했다가 금방 지는 근성 없는 꽃. 근데 딱 23살 이후로 벚꽃이 좋아졌어. 그때 첫사랑이 시작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아님 드디어 벚꽃을 아름답게 여길 수 있는 소양이 되었던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벚꽃이 아름답다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랫말에 현혹된 건지. 아무튼 운이 좋은 건 우리 집 앞에 빼곡히 심긴 벚꽃나무 길이 있다는 거. 그래서 벚꽃이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건데, 어찌되었든 꽃 자체는 예쁘니까."


"벚꽃은 너무 좋지. 가을에 꽃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응. 나도 그래. 아무튼 나도 벚꽃을 꺾어본 적은 없는 거 같아. 그래야 내년에도 후년에도 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 소유했을 때는 그 순간뿐이지만 존재만으로 사랑하면 이렇게 벚꽃이 전혀 피지 않는 가을에도 분홍분홍 하게 벚꽃을 떠올릴 수 있거든. 그래서, 그냥 얘기해봤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가을에 피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보다 봄에 핀 벚꽃까지도 불러내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가 더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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