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리 지난주 월요일에 만났을 때 그런 얘기했잖아. 인간은 필연적으로 연약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랬었지."
"그 명제를 깔고 오빠를 봤더니, 보이더라고. 일에 바빠서 나에게 신경 못쓰는 모습 뒤에 숨어있는 연약함이. 나는 단순히 우리가 오래 만났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소홀해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거든. 근데 완벽해 보여서 미처 알지 못했던 오빠의 연약함이 이거였던 거야. 막연한 자기의 미래가 불안해서 쉴 틈 없이 살고 있는 건데 내가 옆에서 왜 그렇게 바쁘냐, 우리 만날 시간도 없다, 힘들다 하면서 너무 독촉한 건 아닌지. 그 날 집에 걸어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이 시기를 가장 가까이서 공유하는 건 난데, 내가 아니면 누가 오빠 인생의 지지자가 되어줄까 싶더라. 마음가짐이 바뀌었고 관계를 좀 더 건설적으로 보게 되었어. 서로의 약함을 보듬고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니까, 기적을 다른 어디에서 찾을 필요가 없이 사랑 자체가 기적인 거야. 그 날, 우리의 대화를 곱씹으면서 나는 뭘 느꼈냐면. 사랑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도 힘들고, 여차저차 연애를 오랫동안 연애를 이어가는 너희도 이런 문제들로 힘들고, 인생이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거야. 사랑은 해도 안 해도 어려운 거구나. 뭐 이런 게 다 있냐? 그러면서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사랑 덕분에 가능해지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 나 같은 경우는 약속 시간 칼같이 지킨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늦장 부려서 피해주기 싫거든. 반대로 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약속을 잡고 만남을 가지는 건데 상대편에서 건성으로 그 시간을 때우는 느낌을 받으면 바로 그 관계는 아웃인 거지. 화도 나고.
근데 사랑을 하면, 상대가 예를 들어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고 하자. 그래도 화가 안나잖아. 내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귀여운 투정 부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하겠지.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선물 사는 거 잘 못하는 이기적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할 테고. 기브 앤 테이크가 명확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용납되는 것. 그래서 나는 꼭 사랑을 하고 싶어.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제일 첫 번째 방법이니까. 어찌 됐던 사는 건 힘든 건데, 그래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멋있어."
"네 말대로 이 관계가 기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오랜 시간 불가능한 것을 해왔던 부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할 수 있었다는 게, 돌이켜보니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인데 그게 몇 년 동안 오빠 때문에 가능했구나. 갑자기 오빠한테 되게 고마워지네. 혼자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는 영역을 오빠가 옆에서 함께해준 거니까. 자아가 무럭무럭 커진 기분? 이런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네가 연애를 하면 어떨까? 궁금해져."
"아마 이 힘들고도 기쁜 과정들을 수반해야 하는 걸 알았으니 되게 소중하게 생각해서 오래오래 만나지 않을까? 나도 내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약속시간에 늦은 너에게 너그러워지고,
너의 마음을 얻으려 사소하게나마 애쓰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나는 이런 부분이 연약하니,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부탁하고,
좋아하는 가게가 어디인지, 커피는 투샷으로 진하게 마시는 걸 좋아하고, 이 시기엔 항상 입술이 부르트니 립밤이 필수라는 너의 생활 속 기호가 적절한 순간에 저절로 기억나는 것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것도,
그 이유가 잠든 동안 전송되었을 너에게 온 메시지 확인인 것도,
혹여 아무것도 와있지 않아도 내가 먼저 잘 잤냐고 물어보는 게 설레는 것도,
사소한 에피소드, 사소한 속상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노래들도.
혼자였을 때는 가능하지 않던 이 모든 것이 사랑 하나면 가능해진다.
사랑이라니.
결국엔 사랑.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