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주는 감상

by 윤지영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다. 지도에서 보면 도봉구는 서울 끝자락에 겨우 걸친 모양새다. 지금은 쌍문동에 번화가의 상징인 영화관이나 스타벅스가 있지만 내가 막 새로운 세상에 눈뜨기 시작했던 스무 살 무렵에는 그런 것들이 동네에 없었다. 친구들은 우리 집이 멀다고 놀러 오지도 않았으면서 어쩌다 올 때면 너네 동네는 시골이냐고 순진하게 물어보곤 했다.

이런 이유로 약속이 있을 때면 내가 서울의 중심부로 가게 되었다. (나도 세련되고 최신 유행이 있는 번화가가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해서 홍대나 이태원으로,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종암동, 왕십리, 압구정을 거쳐 신사로. 중심지로 가려면 보통 한 시간이 소요되니 자연히 지하철과 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중교통은 그 공간만이 주는 독특한 무드가 있다. 똑같은 방향으로 쿠구 쿠구- 흔들리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해질녘 서울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한남대교. 서민의 노고와 고단함, 무표정 얼굴이 자연스러워지는 곳.

그렇게 버스와 지하철이 일상으로의 영감을 준다면 비행기 안에서는 또 다른 감상이 나를 찾아온다. 이것은 조금 특별한 감상이다. 그래. 비행기 안에서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어졌다.





일단 이륙하고 나면 이내 고막을 누르고 배에 아릿한 느낌을 주는 비행기 안. 이 곳은 신체적인 자극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시간, 큰 돈을 투자한 여행을 제일 선두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때문에 나는 비행기가 선사하는 느낌을 좋아한다.


물론 곧바로 휴대폰이 먹통이 되고,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 중단과 메신저가 차단되면 금세 무료해져 설렘이 반감될 수도 있다. 엉덩이 한 짝 들썩거리는 것도 옆사람이 눈치채는 이 좁은 곳, 창가를 좋아해서 창가 자리를 골랐는데 화장실 한번 가려면 옆사람의 너그러움을 구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곳. 주스를 주면 주스를 마시고,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그들이 건네는 기내식을 자동적으로 먹게 되어 사육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이 자리. 생각해보니, 설레지 않을 일이기도 하다. 비행기를 탄다는 건.


나의 경우는 옆 일행이 잠들면, 그때부터 진짜 나만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므로 비행기 안은 여행의 본질에 최초로 도달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에서 너무도 바빴던, 그리고 골치 아팠던 모든 일을 꺼버리고 내면의 소리를 만난다. 지영아. 구름은 여전한 방식으로 흐르고 땅과 바다는 저 아래에 있는데 무슨 걱정을 여기까지 이고 지고 왔니. 크게만 느껴졌던 근심과 혼란이 툴툴 털어진다. 차분히 사람과 일에 치어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 안을 은근히 기다린다.

파리로 가는 11시간 동안, 휴대폰 사용의 제약 앞에서 여행지를 눈으로 그려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 반 동안의 여행을, 거기서 만나게 될 위기와 낭만을, 물리적으로 심적을 안정된 곳을 떠났기에 얻게 될 불확실의 미래를 스케치한다. 그곳은 어떨까. 거기서 만날 고흐와 센 강은, 파리의 어린아이들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창밖으로 보이는 몽글몽글한 구름 같을지, 아니면 신체적 자유를 속박당한 이 모습의 연장 일지 아직 모르겠다. 아. 여행은 미지로 떠나는 순례길 같아서 더욱 담대해진다.

그 모든 감상을 태연하게 제공하는 곳. 비행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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