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뭐라고 대답하세요?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카페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3년 내내 무리 지어 지내다 어느 순간 자연히 멀어진 동창은 그때보다 볼살이 꺼지고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이게 얼마만이야? 나 잘 지내지! 너는 잘 지냈어?”
“요즘 회사 다녀. 명동에 제약회사. 나 성동구로 이사 갔잖아.”
“언제 갔어?”
“몇 년 됐지. 이야. 일 때문에 오랜만에 이 동네 왔는데 널 딱 보네.”
“그러게. 신기하다. 참. 너네 강아지도 아직 잘 지내고?”
너네 강아지 아직 살아있냐고 물으려 했는데 애견인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일까 봐 강아지도 잘 지내냐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강아지는 3년 전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나는 애도의 눈썹 표정을 지었다. 그는 새로운 반려견을 키우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대충 근황을 주고받고, 최근 그의 관심사인 서핑과 출사에 대해 화제가 옮겨졌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는 예정된 스케줄이 있다며 번호를 교환하고 유유히 카페를 나갔다.
잘 지내?
누가 물어보느냐에 따라 나는 잘 지낸다고 명료하게 대답하기도 하고, 잘 못 지낸다고 하면서 구구절절 나의 근황을 늘어놓기도 한다. 얼마나 친한지의 여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야기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답의 길이가 달라지기도 한다.
동창을 만나기 전날, 동고동락했던 언니를 만나서 수다의 물꼬를 텄다. 그 날 내가 들은 첫마디도 그거였다.
“윤지영 요즘 어때. 잘 지내?”
“언니. 요즘 힘들어 죽겠다. 회사에서는 매출 올리라고 아침마다 회의하지. 연애는 안되지. 아 나는 도대체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걸까?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한참을 나의 요즘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손동작과 한숨을 피처링 삼아. 그리고 내 근황을 요약하자면 요즘 잘 못 지낸다는 결론이 난다. 사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동창에겐 구구절절 나의 삶을 얘기하기가 번거롭고, 또 조금은 수치스러워서 ‘잘 지낸다’는 말로 근황을 압축시켜 버렸다.
그러나 진실한 관계는 타인이 건네는 잘 지내냐고 묻는 안부에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꺼내는 말들로 시작되는 거 같다. 보통은 잘 지내냐는 안부에 아니,라고 대답하면 상대는 왜 잘 못 지내는지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편안하게 나의 지질한 근황을 말하다 보면 내가 무엇 때문에 근심인지, 어떤 억울한 것을 하소연하고 싶어 하는지 대화하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 나를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내 얘기가 끝나면 상대방도 자신이 얼마나 못 지내는지 말해준다. 그러면서 그래도 너 정도면 괜찮다고 따뜻한 위로를 해주기 마련이다. 그러면 나는 거기서 위안을 얻고, 내가 받았던 위로로 상대방을 위로하며, 다시 삶을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받는다.
그러니 잘 지내냐고 묻는 말에 무조건 ‘잘 지내지’라고 너스레 떨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보길. 무궁무진한 내 인생의 감정 표현법을 배우며 한층 끈끈해진 관계까지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조금만 수치감을 직면하면서 용기를 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