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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권태기가 있어야 하나요

있어야 하는 일인 권태기

by 윤지영



"내 인생의 최대 과제가 사랑인 거, 알아?"


"그래? 그건 몰랐네."


"왜냐면, 내 인생에서 제일 어렵고, 제일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서. 일머리 없던 내가 이 악물고 회사에서 버티니 이제는 제법 인정을 받거든. 근데, 사랑은. 안돼. 버틴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안 되는 게 무슨 말이야? 그거 그냥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물 흐르듯이, 저 애를 알고 싶다. 그러다 더 오래 보고 싶고, 그러다가 사랑하고."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야. 같이 있으면 재밌어서 더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은 있지.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다 사랑이 아니잖아. 서로의 미래를 책임지고 싶고, 그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를 키워가고 싶은 거. 이것도 사랑의 종착지는 아니지만. 이 감정까지는 안 생기더라고."


"너. 오래 만난 사람 있었잖아. 그럼 그 사람도 사랑이 아니었어?"


"걔. 좋아했지. 많이 사랑했지. 맨날 울었지 걔 때문에. 근데 아무리 좋아해도 딱 3년 되니까 권태기가 오더라고. 해석이 안되는 거야. 내가 매일 밤마다 흘린 눈물을 모아서 좋아한 사람인데. 젊고 예뻤던 날을 함께한 사람인데 그 마음이 변하는 거야. 그 애가 입던 목 늘어난 티셔츠, 그거 사랑스러웠는데 그냥 그만 좀 입지. 그렇게 됐어 마음이."


"아 개웃겨."


"권태기 얘기 나오니까 말인데 결국에 걔랑 헤어진 게 권태기 때문인 거 같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내가 걔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땐 그래도 사랑하니까 견뎌지는 게 있었어. 근데 권태기가 오면 그게 안돼. 원망스러웠어. 사랑을 변하게 하는 거 같았거든."


"맞아. 영원한 사랑은 없어. 거기에 권태기가 한몫하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권태기가 작용한 시간이 있어야 했던 일이란 게 인정이 되더라. 권태기가 없었으면 아직도 난 걜 사랑한다고, 울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겠지. 권태기는 좋은 사랑에겐 권태기를 버틸 힘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랑에겐 핑크 렌즈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는 거 같아. 권태기의 존재 이유를 알았어."


"네 말 듣고 보니 그렇다. 있어야만 하는 권태기. 그럼 이제 사랑이 뭔지 좀 알겠어?"


"아니. 아직도 몰라. 가끔은 이런 내가 습기가 가득 찬 욕실에서 스웨터를 입는 머저리 같아.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어. 근데 억지로 안 하려고. 그저 나의 이십 대가, 이십 대가 가기 전에 사랑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채길 바랄 뿐이야."




그렇게 사랑을 모르는 저는

사랑의 한 부분인 권태기에 대해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사랑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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