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할미에게서 아이의 순수성을, 아이에게서 어른의 사려 깊음을 보듯이
며칠 새 온 땅이 가마솥 같이 지글지글 끓었는데 어제 한바탕 비가 오고 나더니 이제 좀 괜찮다. 낙산공원 이름 모를 평상에 앉아 친구는 운을 뗐다. 매미가 울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아직까지 그럴까. 어제 나 집에 열두 시에 들어갔잖아. 근데 그 시간까지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는 거야. 큰소리 나고. 벽을 쾅쾅 치고. 우리 집 주택이라서 방음도 잘 안되는데 동네 사람 들을까 봐 너무 창피한 거 있지. 나이 오십 먹고서 아직도 초등학생들처럼 싸우고 있어. 그런 엄마 아빠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 솔직히 말해서 무시가 돼.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어른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 들어.”
“마음 어려웠겠다. 엄마 아빠는 뭐 때문에 싸우신 거야?”
“맨날 똑같지. 처음부터 너랑 결혼하기 싫었다. 이제라도 갈라서자. 네가 한 게 뭐가 있냐, 그런 말들. 결국 사소한 걸로 감정 상해서 서로 기분 나쁘게 하는 그런 언쟁만 계속하는 거야. 들어보면 본질 하나도 없어. 뭐 나도 다 크긴 했지만 그런 말 들으면 괴로운데 내 앞에서 그러고 싶을까. 야. 부모님 흉본다고 너도 내가 불효자 같냐.”
“아니. 더 심한 부모님 많은데 뭐. 나도 엄마 아빠를 백 프로 사랑한다고는 못해.”
슬리퍼를 발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놀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축 처졌다. 어젯밤 친구의 어깨에 지워진 부모님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은 몇 그램이었을까. 자포자기하는 듯한 그 애의 발놀림을 물끄러미 보았다. 한참 뒤에 내가 입을 뗐다.
“그, 꼭 육체의 나이만큼 영혼도 나이 먹는 게 아니더라고. 종종 보잖아. 다 큰 어른들도 떼쓰고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거. 어제는 너희 부모님께서 없잖아 그러신 거 같고. 우리는 이제 사람을 영혼의 나이로 봐야 해. 몸은 다 컸는데 마음에 아직 어린아이가 살게 내버려두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너, 부모님 영혼의 나이가 몇 살로 보여?”
“다섯 살. 이럴 때 보면 진짜 다섯 살.”
“그니까. 엄마 아빠도 결국 다섯 살인 거지. 어린 거야. 엄마 아빠 딱지를 떼고 그 사람의 실체를 볼 줄 알아야 되는 거 같아. 부모님이 싸우실 때 그들을 영혼의 눈으로 봐봐. 다행인 건, 너는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 같아. 그니까 매일 밤 큰소리 나는 집에서 잘 견디면서 살았지. 한편으로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잖아 너.”
발가락 끝에서 신발이 툭 떨어졌는데 친구는 다시 걷어올릴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나도 그냥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여전히 매미가 울고, 내가 지금 위로를 한 건가 개소리를 한 건가 구분이 안돼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건너편 층층이 모여있는 주택가를 물끄러미 보던 친구가 일어선다.
“해볼게. 영혼의 나이로 보는 거. 이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