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날씨 이야기는 아니다.
한남동 어딘가에 우리의 아지트를 찾았다. 주택가 사이에 빼꼼히 자리하고 있어 시끌벅적하지 않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 카페 또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었다.
푹푹 찌는 한 여름인데도 카페 안은 냉방 때문에 서늘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에어컨의 마른 추위가 목덜미의 습한 기운을 한 방에 잡아버렸다. 나는 반팔에 다소 짧은 반바지와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이내 발이 시려졌다. 팔 언저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여름도 겨울처럼 만들 수 있다니! 인간이란 대단하다.
더위를 씻어내고 몸에 냉기가 도니, 카페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위로 올라가면 루프탑인가 보다. 우리 올라가 볼까, 하며 친구에게 눈짓을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데 다시 더운 기운이 몸을 엄습했다. 여름이니까 당연히 더울 수 있다며 쿨하게 계절을 인정하기로 한다. 사실 나는 추위보단 더위에 강하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더니,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나니까 아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다. 나의 합리화 또한 대단하다.
루프탑에 오르니 한남동 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주택가에서 심긴 감나무엔 연두색 감 열매가 옹골지게 매달려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문을 열어놓고 옥신각신 하는 모습 또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집 창문으로는, 주방에서 쓰는 각종 식기와 세제까지 엿보였다. 그러다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된 건 우리가 있는 곳보다 낮은 옥탑 마당에 앉아있는 커다란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다. 약간 둔 해 보이는 대형견의 회색 털은 오늘 먹구름과 똑같은 색이었다.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강아지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괜스레 눈을 부라려보기도 하고 우쭈쭈 하면서 혀도 차 보았다. 털로 반쯤 가리어진 눈에선 우리가 소통을 하고 있는 건지 불통인 건지 알 길이 없어 보인다. 옆에 앉은 친구는 반려견을 총 8마리 키워본 애완견 베테랑이고 나는 반려동물이 무서워서 아예 관심도 없는 척하는 소심이기 때문에 강아지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의례적으로 주고받았다.
이내 비가 올 건가 본지, 먹구름이 한껏 내려앉은 한남동의 풍경을 보다가 이따금 그 옥탑방을 곁눈질해보면 먹구름 강아지도 나를 보는 거 같은 느낌! 혹은 나만의 착각. 그렇게 몇 번을 눈을 맞추다가 갑자기, 먹구름의 이상행동을 발견했다. 허공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몸을 약간 헐떡대는. 마치 토하기 전 준비자세 같다고 해야 할까. 그걸 몇 번을 반복하길래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쟤가 뭘 하고 있는 거야?
친구가 먹구름을 보고선 말한다. 아 쟤, 주인이 성대 수술시킨 거야. 그래서 짖고 있는데도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야.라고 했다. 한때 층간소음의 원인으로 강아지 울음소리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유행처럼 번진 애완견 성대 수술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지만 실제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강아지를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잔인하다고, 어떻게 동물에게 소리를 빼앗을 수 있냐고 격분했더니 친구는 동의하는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렇지, 몹쓸 짓이야. 진짜 불쌍해 강아지들. 지금 다른 집에서 개가 짖고 있어서 쟤도 짖는 거야. 근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지.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가 소유하려고 개들의 정체성을 빼앗잖아.
다른 개가 짖으니까 얘도 짖는다는 건, 그게 개들이 대화하는 방식인 걸까? 너 오늘은 무탈하냐.라고 이웃 강아지가 안부를 물을 때 먹구름은 대답을 하더라도 그게 친구에게 전달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동물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야생성이자 동족과의 하나뿐인 소통 창구를 빼앗다니.
이건 어쩌면 반려 주인들에게는 당연한 문화인데 내가 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는 주제에 섯부르게 판단하는 거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지배하고 고유한 성질을 제거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지 반문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주인이 사랑이랍시고 베푸는 권력은 용납될 수 있는 부분일까.
미안해, 미안해, 눈으로 전달해보지만 먹구름은 이제 이 쪽을 보지 않고 줄기차게 한 곳을 향해 짖는다. 토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짖는 모습이 얼마나 처연해 보이는지, 진짜 먹구름보다 더 우울하다. 네가 그렇게 짖어도 친구한테 안 들릴 거 같아 바보야. 불쌍해. 미안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먹구름이 결국 비를 후드득 쏟아내서 루프탑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먹구름 강아지도 비처럼 시원하게 소리를 쏟아내는 상상을 한다. 커다란 몸짓처럼 소리 또한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이 우렁찰 것이다. 다시 실내로 들어오니 겨울이다. 인간은 정말로 대단하지 않아? 하며 친구랑 눈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