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몽상가
퇴사를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회사를 증오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나 가슴 한켠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입버릇처럼 회사 욕을 하고 "당장 그만두겠다"며 불평을 쏟아내는 이들이 오히려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인들 사이의 웃지 못할 아이러니이자, 일종의 '국룰'인 셈이지요.
저 역시 그들처럼 매일 떠나는 꿈을 꾸는, 이른바 '퇴사 몽상가'입니다. 하지만 저의 몽상은 조금 다른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는 별개로, 저는 지금 다니는 이 회사가 참 감사합니다.
"23살의 저는 앉아서 일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감사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온 저에게 회사는 단순한 일터 그 이상이었습니다. 경제적 자립이 생존과 직결되었던 시절, 제가 거쳐온 일들은 대부분 고된 육체노동이었습니다. 설렁탕집 서빙, 대형 마트 아르바이트, 새벽 신문 배달(아빠 따라서 하루 해봤습니다만, 아빠의 알바였다는 것도 슬프죠)... 그 모든 일의 공통점은 하루 종일 다리가 붓도록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랬던 제게, 내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아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회사 식당에서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사함에 휩싸인 날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제게는 고마운 안정이었습니다.
그뿐일까요. 회사는 제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태도가 남달랐나봅니다.
대부분 웃거나, 친절함이 있는 나이스한 태도.
이것이 사회에 나오니 특이해보이는 장점이었습니다. 또, 눈치 챙겨야 할 순간을 읽어내는 감각, 어려운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끼인 세대으로서 위아래를 조율하는 중간자 역할까지.
비록 어설프고 서툴렀을지라도, 그 치열한 시간들은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감정의 주인이 되어 나가는 연습
물론 회사 생활이 늘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위 '짜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불합리한 상황에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움도 주고 급여도 주는 이곳을, 단지 사소한 괴로움 때문에 내 얼굴에 침 뱉듯 욕하고만 다니기엔 우리가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저는 퇴사를 꿈꾸는 우리들이 조금 더 영리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차하고 찌질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을 욕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실전 훈련장으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요?
회사를 나서는 그날, 통장에 찍힌 퇴직금뿐만 아니라 '성숙해진 태도'라는 무형의 자산까지 챙겨갈 수 있도록 말이죠.
오늘도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한 전국의 모든 퇴사 몽상가들,
우리의 현실은 지옥구덩이가 아니라
졸업 후 새시작을 할 수 있게 배움을 주는 곳으로 바꿔내길 응원합니다.
- 회사일로 열받으면 아주 무서운 작가, 암튼 올림-
#직장생활 #퇴사 #마인드셋 #성장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