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
나는 23살에 입사했다.
군대를 가지 않는 여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23살에 대기업 대졸신입으로 입사하는 방법은 단 두 개.
하나는 중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한 영재(과학고) 출신이거나, 나처럼 빠른 년생이 존재하던 시기에 태어나 7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것. 그리고 대학 입학 후 한 번의 휴학 없이 칼졸업, 칼입사를 하면 가능하다.
요즘은 빠른 년생이 없어졌으니,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유년 시절, 우리 부모님은 돈이 풍요롭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이 있다가 없어지면 어떤 결핍들이 생기는지 직접 경험하며 자랐다.
가장 큰 사건은 고3 때 우리 집이 가장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으니, 고3이라 안방을 내어주셨던 부모님의 배려가 큰 부담으로 와닿았다. 그래도 그 덕에 고등학교 3년 중 가장 열심히 했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때부터 대학생 때까지의 나는
“자주 웃는 사람이었지만, 속은 곪아있던 사람”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뭘 해도 안 될 거라 생각했기에...
그래서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항상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라고 답해왔다.
그렇게 23살이 되었고, 천운이 따라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아버지의 눈물이 기억이 난다.
운대가 터졌나, 그렇게 첫 번째 동기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를 만나 매달 따박따박들어오는 월급으로 전시. 미술품, 서울의 맛있는 커피집, 술 등을 함께 즐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색하는 법도 배우고, 상황이 어려워도 헤쳐나갔던 언니를 보면서 나도 은연중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도 본인을 잃지 않는 동기언니를 보며, 나는 앞으로도 그녀가 밟은 발자국의 영향을 받고 따라갈 것이다.
그렇게 10년 뒤, 또 회사에서 운대가 터졌다.
오 과장과 대장님이라는 귀인들이 나에게 한꺼번에 찾아왔다.
오 과장님과 업무 적으로 엮이고, 인간적으로 교감하면서 친해졌다. 그가 대장님을 끌고 와줬다.
그렇게 만난 세명은
[경자인 =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
이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5년째 함께하는 중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부동산의 처세술, 간접 경험, 지혜들을 얻었고 나는 그들에게 자존감 높게 사는 법, 나를 사랑하거나 또 즐겁게 잘 노는 법에 대해 알려주며 같이 재밌게 놀면서 부를 공부했다.
이렇게 입사 후 16년이 지난 지금,
나도 어느덧 이웃집백만장자가 되었다.
내 주변은 ‘니까짓 게?’라고 질투하는 사람보다, ‘꿈을 하나하나 다 이뤄가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너무 좋은 영향받아’라고 말해주는 친구들만 주변에 남았다.
게다가 단순 자산의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부가 많이 쌓였다.
행복한 가정/ 만족할 줄 아는 마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경청의 자세/
작은 것에도 행복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
내가 경험하고 지내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등등.
가만히 있어도 나의 최측근들 덕분에 새로운 우주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이
친구 잘 사귀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말이었나 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 글을 보며 다른 작가님들은 공감을 해주실까? 아니면 ‘이 작가는 운이 좋았네’라고 생각하실까?
맞다.
나는 운이 너무나도 좋은 케이스다.
그렇지만 내 환경이 좋지 않아도 언제든지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 카페, 모임 등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이니까.
직장자체가 내 온 세상이고, 우주가 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