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방송작가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
휴일이란 무엇일까요?
방송작가로 일하길 원하신다면, 휴일이나 명절 같은 정규직들의 빨간 날들은 잊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설 전날이던가요? 그렇다면 내일이 설 당일인가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오늘도 일했고 내일도 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방송작가에게 휴일이란 대체 언제일까요? 그 주의 원고를 다 써야 휴일 비슷한 것이 오긴 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쉴 수 없기 때문에 휴일 비슷한 것이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패널들에게 계속 연락을 돌려야 하고 피디가 원고 컨펌을 할때까지 계속 대기를 타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라디오 작가가 그렇습니다.
TV작가는 그래도 방송을 마친 날은 맘 편하게 쉴 수 있는데, 매일 방송을 해야하는 라디오 작가에게 오늘 방송을 마쳤다는 것은 이제 내일 방송을 준비할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평일은 평일이라 바쁘고 주말은 다음날이 평일이라 바쁩니다. 참고로 라디오 작가에게 토요일은 평일입니다.
그러니 라디오 원고를 일주일에 7개 전부, 혼자 쓰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미친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피디가 일주일에 7개 전부를 혼자 해달라고 했을 때는 멋모르고 알겠다고 했습니다. 라디오는 처음이라 너무 몰랐기도 했고, 오랜만에 잡은 일자리라 돈 욕심이 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피디가 아예 방송 자체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어서 저보다 더 상황 판단이 안 됐다는 점입니다. 딴에는 작가가 한 명인 것이 통제하기 더 수월할테니 제게 전부 다 써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달 만에 백기를 들었고, 작가 한 명을 더 투입해달라고 거의 울다시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달을 버틴 것도 용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뭐랄까.. 한달 동안 절대 하선할 수 없는 원양어선을 탄 기분이었습니다. 이것만 끝내면 쉴 수 있으니깐 조금만 더 힘을 내자구! 따위의 희망회로를 절대 돌릴 수 없는 원양어선말입니다.
오늘 원고가 끝나는 순간 다음날 원고가 시작되고, 다음날 원고가 끝나는 대로 또 그 다음날 원고를 시작되니, 시작의 무한궤도 속에서 죽어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절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밤 아홉시가 되어서야 내가 저녁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탁에 놓여 있는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자정이 넘도록 원고를 작성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쯤 되면 돈은 벌어 무엇하나, 죽어버리자, 하는 극단적인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러니 휴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휴일이 없으니 휴가 따위는 더더욱 있을 리 만무합니다. 데일리 라디오 방송 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 역시 방송이 완전히 종영할 때까지는 휴가라는 것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다큐의 경우는 다르긴 하나, 위클리나 데일리 방송을 맡고 있다면 휴가는 종영 혹은 때려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때문에 방송을 하게되면 언제나 막방, 즉 마지막 방송만을 기다리게 되는데, 막상 프로그램이 끝나면 내 안의 모든 생명수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아서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그리하여 한동안 누워서 지내다가 원기가 회복될 즈음엔 슬슬 다음 밥벌이가 불안해지며 다시 휴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방송작가란 그런 것입니다. 개처럼 버는 삶의 표본입니다. 비위 맞추고 눈치보며 일하다가도 언제든 버려질 수 있고, 버려진다해도 다음 계약을 생각하며 방긋방긋 웃어줘야합니다. 휴일도 없이, 휴가도 없이 일하지만, 일을 할 때조차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끝판왕, 그게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의 삶입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 2
휴일은 잊어라
휴가는 아예 존재한 적이 없다
ps. 너무 단점만 말한 것 같아 방송작가의 최대 장점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방송작가는 매일 출근을 안 해도 됩니다. 제 주변 메인작가님은 위클리 교양 프로그램을 하시며 고료로 월 5백 정도 받으시는데, 한달에 한 번 정도 출근을 합니다. 예, 꿈만 같은 이야기지요. 그런 1%의 작가를 꿈꾸며 99%의 작가들이 개같이 버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