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쓰기] 온순한 짐승

[일상쓰기] 층간소음에 관여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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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혹시, 괴로우신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글감 하나를 획득하신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 고통은 글쓰기의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괴로우실 땐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저도 최근에 추가된 고통이 있어서 오늘은 그에 관해 써볼까합니다. 그것은 바로, 층간 소음입니다.


다산의 아파트


종종 보여드렸듯, 제가 사는 곳은 다산의 마력을 가진 아파트입니다. 레몬나무는 영하 십도의 한 겨울에도 정신없이 꽃망울을 틔우고 고추나무도 매일 크고 작은 열매들이 조용히 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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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박사같던 버터헤드 상추는 이제 제법 늠름하게 자리를 잡았고, 양배추는 그렇게 뜯어먹히면서도 착실히 결구를 맺어갑니다. 식충이 아프락사스도 새로운 꽃대를 피어올릴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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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다산의 아파트입니다.



KakaoTalk_20221225_132444943.jpg?type=w1 오늘 아침, 영하 7도의 날씨에도 거뜬한 초록이들


그런데 식물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인간에게도 다산의 공간이었습니다. 제 오른쪽 집, 왼쪽 집, 그리고 윗집까지, 모두 어린 아이들을 둘 씩 키우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전부 남자 아이들입니다. 저는 이 세 집의 엄마들의 성격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엄마는 수더분하고, 왼쪽 엄마는 앙칼지고, 윗집 엄마는 늘 지쳐있습니다. 이들에게 저는, 대체로 조용하지만 한번씩 광기에 휩싸이는, 그런 이웃으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세명의 엄마 중 윗집 엄마하고만 두 번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번은 대면으로 대화를 나눴고 다른 한 번은 필담이었습니다. 주제는 이미 예상하셨듯, 층간소음입니다. 우리가 필담을 나눌 때, 아이 엄마는 제게 미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비타오백 한 상자를 주었고, 저는 또 그게 미안해서 아이들과 같이 먹으라고, 단감을 한 봉지 문앞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따뜻한 역사가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세상


문제는 우리가 아파트라는, 완벽하지 않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사는 아파트에 자체적인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왼쪽 엄마의 악쓰는 소리가 이 정도만 전달되는 것을 보면, 전에 살던 집들에 비해 오히려 우수한 편입니다. 그러나 윗집 아이들의 뛰는 소리는 좀처럼 차단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콘크리트를 아무리 두껍게 바른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뛰는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건축물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는 나이듦의 축복으로 20대 때보다는 덜 예민해졌고,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세살 안팎의 아이들은 흡사 작은 짐승과도 같았습니다. 걸음마도 뗐겠다, 다리에 근육도 붙었겠다, 그들은 야생의 짐승처럼 다리의 기능을 마음껏 사용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다리가 달렸으니 뛰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네 발로도 뜁니다.


그런 아이들의 본능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엄마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나이대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을 보면 늘 지쳐있습니다. 슬퍼보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라는 세상은, 아이들의 이런 달리기 본능을, 엄마가 철저하게 통제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슬픕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아 슬픕니다


밤 10시마다 안방으로 누우러 갈 때마다 저는 몹시 슬픕니다. 침대 누워 듣는 아이들의 발소리는 흡사 망치 소리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짐승같은 본능으로 거실과 안방을 미친듯이 질주하며 제 방 천장을 온통 흔들어댑니다. 곳곳에서 망치질을 해댑니다.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며 망치질 소리가 작아졌다가 커짐에 따라 저는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는 것을 반복합니다. 정말이지 고역입니다.


이런 망치질 소리가 20분을 넘어가면 잠은 싹 달아나버리고 정신은 또렷해집니다. 온 신경이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집중됩니다. 가슴이 조여오고 심장이 쿵다쿵닥 뜁니다. 그렇게 30분이 넘어가면 저는 흉포해집니다. 이성을 살짝 잃습니다. 창을 드르륵 쾅, 드르륵 쾅 여닫으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지금은 우리가 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윗집에 알립니다. 그러면 잠시 조용해집니다.


광란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어제는 10시가 넘어서 시작된 광란의 발망치 소리가 무려 두 시간이 다 돼가도록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보니 이미 자정에 가까웠습니다. 다음날 5시 기상은 물건너 갔습니다(저는 10시에 자서 5시에 일어납니다) 마침내 벌떡 일어나 앉은 저는,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여닫으며, 애 좀 안 뛰게 해달라고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고함 소리에 아래층 개가 짖었습니다. 세 개의 층에서 네 마리의 짐승이 각자의 방식으로 짖어대는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오직 문명인들만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누가 이 소란을 일으키는 것인지 귀를 쫑긋 세웁니다. 범인은 접니다. 아이와 개는 짐승처럼 굴어도 되지만 서른 여덟의 방송작가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제게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것은 밤중에 장시간 소음에 노출되어 이성이 마비된 탓입니다. 다 소음때문입니다. 아이도, 개도, 그리고 저도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그저 보통 사람입니다


역시 예상대로 오늘은 5시에 기상하지 못했습니다. 스탠드를 켜고 뉴스를 틀었으나 눈을 떠보니 뉴스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 있었고 창밖에선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7시였습니다. 저는 성소로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부처님 사진을 켜놓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KakaoTalk_20221225_132443081_(1).jpg?type=w1 셀프 페인팅에 실패한 이 방을 우리 집 '성소'로 정했습니다. 그러고나니 꽤 그럴듯 해 보입니다.

아이는 아마 생애 두번째, 혹은 세번째로 맞는 크리스마스에, 어쩌면 산타 클로스에게서 선물을 받은 흥분에, 자정이 다 되가도록 기쁨의 뜀박질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해보지만, 저는 오늘밤 다시 그런 소음이 들리면 또다시 이성을 잃고 광폭하게 짖어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했습니다. 참회 기도 좀 한다고, 스스로를 이런 소음도 기꺼이 인내할 수 있는 인격자라고 착각하는 순간, 더 큰 분노와 더 큰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랑스러운 네 가족이 아침을 먹고 다 치웠을 시간인, 오전 11시에 그들의 현관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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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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