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한 짐승 2.

[일상쓰기] 층간소음 대처법

by NOPA




일상과 글쓰기.jpg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층간소음의 괴로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2965107922



오늘은 그 집 현관문 앞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집 앞


초인종을 누르고 '아랫집입니다'라는 제 대답에 안에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동도 없이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 문을 연 사람은 아이 아빠였습니다. 아이 엄마는 방 안으로 몸을 감춘 듯했습니다. 아마 미안해서일 겁니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사실 실례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일요일 오전에 위층을 찾아간 것도, 아이 아빠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아이 엄마가 있는 시간에만 위층을 찾아간다고 하시는데, 사실 층간 소음을 이야기할 땐 양육자 두 명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듣기만 한 쪽은(주로 아이 아빠) 아랫집의 고통이 별로 심각하게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해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들어야, 두 번 다시 저 여자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단속할 것입니다. 지금 아이 엄마가 제 얼굴을 보고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 엄마는 저를 왜 이렇게 불편해하는 걸까요?


그것은 제가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소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윗집을 찾아갔을 때 본 아이 엄마는 170은 넘어보이는 키에 장수의 풍채를 하고 있습니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저같은 건 한 손으로도 목을 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도저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아랫집 여자가 초여름의 풋사과를 들고 와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내놓으며 읍소를 했던 것입니다. " 아이 키우기 힘드시죠, 알죠 알죠,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힘이 듭니다. 알죠, 알죠, 아이를 묶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파트라는 곳이 가진 자체적인 문제도 있고.. 그런데 저도 정말 힘이 듭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니, 그런 일을 두 번이나 겪 고보니(두번 째는 필담이지만) 저를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젠 아이 아빠가 그 불편함을 경험할 차례였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중류층 말투에 푹 빠진 아랫집 여자의 호소


다들 아시다시피 마침 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읍소를 할 땐 19세기 러시아 중류층 인간의 말투처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저의 고뇌를 십분 전달하는 동시에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압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부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딴에는 이해를 하느라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허나, 어제처럼 자정이 가깝도록 이어지는 아이들의 뛰는 소리는, 그토록 노력을 경주하는 저에게조차, 몹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두 시간 가까이 머리 위 천장이 쿵쿵쿵쿵 울리는 소리는, 정말이지 영혼이 짓밟히는 일이라는 것을 부디 아시면 좋겠습니다만..
<예, 저희가 더 단속해야 됐는데..>
아니오! 저는 두 분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두분은 훌륭한 이웃으로서 심지어 어제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단속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그 수고를 몰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염치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와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고통의 순간에도, 한가지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빠르게 읖조리며) 아이들이 거실에서 뛸 때는 그 소리가 퍽 견딜만 한데 비해 안방에서 뛸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시, 안방에는 매트가 깔려있지 않은 것입니까?

<아, 안방에는..>
저런! 바로 거기에 지금 우리가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불편한 대화를 나누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고 한다면, 아이가 뛰는 것을 언제나 통제할 수 없다는 이 자명한 현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고, 물론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전적으로 사장님의 자율적인 의사에 대고 하는 것입니다만, 그러면서도 사장님의 고결한 양심에 어느 정도 기대는 제 마음을 너무 나무라지 않으시길 바라며, 부디, 안방에도 매트를 까는 것을 고려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뭐, 예..>
(두손을 잡으며) 세상에! 신이시여! 이것이 신의 축복이 아니라면, 대체 인간이 언제 신의 이름을 이 세치 혀 위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휴일 아침부터 찾아와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제 입장도 무척이나 난처한 것이었는데, 방금 사장님이 제 마음에서 얼마나 큰 짐을 덜어주셨는지, 아마 상상도 하실 수 없을 겁니다. 아내분도 그러시고, 두 분은 탄현동에서, 아니 이 일산서구에서 가장 훌륭한 이웃임에 틀림없습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양손을 비비며) 그럼 염치 불고하고, 방금 하신 말씀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길 바라며, 저는 이쯤에서 저 천사같은 악동들에게 어서 훌륭한 아버지를 돌려줘야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당연히 저렇게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또라이가 아닙니다. 19세기 러시아 중류층의 말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댓글이 있어서 그냥 한 번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말의 흐름은 저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화법은 아이 아빠에게 꽤나 낯설게 느껴졌을 겁니다. 어젯밤에 그렇게 광포하게 창문을 여닫으며 소리를 질러대던 짐승같은 여자가, 아침이 되니 마치 잘 배운 교양인처럼 극도로 예의를 갖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항의보다 호소가 더 효과적입니다.


사실 윗집에 이렇게 예의를 차려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인격적으로 갖춰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는 이 편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많은 항의의 경험을 거치며 제가 깨닫게 된 사실 한 가지는, 사람들은 항의보다 호소에 더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항의는 화를 부르지만 호소는 죄책감을 부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더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지만, 호소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냥 다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호소의 결과는?


이렇게 말했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생각했는데, 효과는 당장 그날 저녁부터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뭘 한 거지? 진짜 뭔 짓 한 거 아냐? 할 때쯤 간간이 쿵쿵 소리가 들려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효과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고, 이들 부부가 끝내 안방에 매트를 안 깐다고 해서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는 쿵쿵 소리가 나도, 내 업보다라고 생각하며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상식적인 사람들을 이웃으로 둔 것같아 안심이 됩니다.


이제 다시는 층간 소음으로 저 젊은 부부를 괴롭히지 말아야겠습니다. 뛰는 아이의 마음을,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의 불완전함을 생각하며 온순한 짐승으로 살아야겠습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2965839112

#노파의글쓰기수업 #글쓰기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실용글쓰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쓰기] 온순한 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