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만들지 않은 호밀빵

[일상쓰기] 영구치를 소중히 다뤄주세요

by NOPA



%EC%9D%BC%EC%83%81%EA%B3%BC_%EA%B8%80%EC%93%B0%EA%B8%B0.jpg?type=w1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지난 번에 브라우니와 스콘을 만들었다고 실컷 자랑을 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2971243291


스콘이 깨닫게 해준 진실


그날 스콘을 와구와구 먹은 후 깨달은 것은 제게는 밀가루 글루텐을 소화할 수 있는 위장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도 밀가루만 먹으면 배탈이 나서 한동안 빵이고 라면이고 못 먹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스콘은 정말 빠르게 제 위장을 스쳐 지나갔고 저는 고통속에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어쩐지, 모든게 쉽고 완벽하다 했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글루텐이 없는 빵을 만들자


그래서 이번엔 호밀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호밀은 글루텐 함유량이 일반 밀가루보다 훨씬 적어 이건 위장 속에 좀 오래 담아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이 꽤나 복잡했습니다. 사전 반죽을 12시간을 하고 2차, 3차 발효를 하고 효모는 언제 넣고...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사람이 삶에서 열심을 기울여 하는 것은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그 한 가지는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그 외의 것은 어느 것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대충하기로 했습니다.


대충 호밀가루랑 물이랑 섞어, 대충 집에 굴러다니는 견과류를 집어넣고, 대충 주걱으로 반죽을 섞어, 대충 오븐에 구웠습니다. 사전 반죽, 1, 2차 발효 이런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너무 열심히 하는 행입니다.


호밀빵, 결과는?


태웠습니다. 괜찮습니다. 대충 탄 부분만 걷어내고 먹으면 됩니다.

















호밀빵, 맛은?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발라 한입 베어물은 순간, 저는 제 혀를 의심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만든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떡이 져서 오히려 쫀득해진 식감과 향긋한 꿀향에 오독오독 고소한 식감까지! 놀랍도록 맛이 좋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덕이기도 합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호밀빵에 햄과 마늘을 겻들여 근사하게 한끼를 차려먹었습니다.

KakaoTalk_20230107_173252205.jpg?type=w1


한번 성공을 맛보니 이번엔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충 만들어도 저런 맛이 나면, 잘 만들면 대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습니다.


호밀빵 제대로 만들기


그래서 저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자기 전에 12시간 사전반죽을 하거 물 대신 우유를 넣어 본반죽을 하고 1차 발효 후에는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공굴리기 성형까지 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호밀은 글루텐이 없어 밀가루처럼 반죽이 잘 안 돼기 때문에 마치 시멘트에 손을 담그는 기분으로,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며 한 시간을 호밀 반죽과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만든 반죽을 오븐에 넣어 1차 200도에 15분 , 2차 180도에 15분 동안 구운 후 꺼냈더니 짜잔!


KakaoTalk_20230107_173254342.jpg?type=w1


그럴듯한 모양의 호밀빵이 완성됐습니다.


무척이나 신이 난 저는 어서어서 잘라서 어서어서 한입 베어물었습니다.

KakaoTalk_20230107_173255345.jpg?type=w1

그리고 오물오물 씹는 순간 저는 또, 이게 정녕 내가 만든 것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리얼 시멘트를 구운 것처럼 딱딱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빵이 아니라 이빨 브레이커였고, 내 영구치를 붕괴하러 온 시멘트 덩어리였습니다.


제가 처음에 만든 호밀빵을 보고 친한 동생이 나중에 애기랑 놀러가면 한 번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섣불리 대답을 안 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유치를 몽땅 뽑을 뻔했습니다.


철근 같은 호밀빵을 씹으며 저는 글쓰기 외에는 어떤 것도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역시 모든 일은 대충해야 만족도가 높은 법입니다.


강된장 복수극


호밀빵으로 치아를 고문당한 후 저는 벌떡 일어나 우렁을 푹푹 삶은 후 틀니 낀 할머니도 드실 수 있을 정도로 연한 우렁 강된장을 만들었습니다.


왜 갑자기 우렁 강된장을 만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양놈 음식에 복수하는 데는 된장만한 게 없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230107_173257371.jpg?type=w1 우렁 강된장과 당신의 이빨을 붕괴시킬 호밀빵


다들 영구치를 소중히 다루는 식사를 하셨기 바랍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2977197520

#노파의글쓰기수업 #글쓰기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실용글쓰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답게 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