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쓰기] 나 혼자 산다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혼자 살게 되면서 한동안 많이 들은 얘기가, 혼자 살다가 아프면 서러우니 결혼하라, 였습니다. 실제로 맞는 말이긴 합니다. 혼자 산지 얼마 안 됐을 때 지독하게 몸살을 앓았는데, 어찌나 서럽던지요.
아플 때 서러우면 초짜다
그러나 그것도 다 한때입니다. 한 해만 넘어가도 아플 때 혼자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껏 아플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편한 일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친구가 일본에서 가져다 준 녹차가 맛이 좋길래 홀짝홀짝 끝도 없이 마셨더니 어느 순간 속이 무척 쓰리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아! 하고 병원에서 받아온 항생제를 아직도 안 먹은 게 생각났습니다. 바보바보, 하면서 항생제를 삼켰습니다.
그랬더니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저녁을 든든히 먹었습니다. 며칠 전에 엄마가 가져다주신 갈비찜을 평소보다 더 많이, 1.5인분 쯤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저는 두 시쯤 갑작스러운 열감을 느끼며 변기통으로 달려가 구토를 했고, 구토를 하자마자 한기를 느껴 다시 이불속을 파고 들었고, 그리고 30분 후에 다시 강한 열감을 느끼며 변기통으로 달려갔고, 그리고는 오들오들 떨며 다시 침대로 돌아오기를 다섯 번은 더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을 변기통을 붙잡고 입을 벌리고 앉아 전날 먹은 1.5인분의 갈비찜을 변기통 속으로 조금씩 소분해 내뿜으며 혼자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50분에 한 번씩 방을 뛰쳐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이불을 덮었다, 걷었다, 불을 껐다 켰다, 그 와중에 갖은 역한 소음을 내는데, 옆에 누가 있었다면 얼마나 민폐입니까.
아플 때 배우자가 있으면 정말 안 서러울까?
가족이라면 당연히 돌봐줄 것이다,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실체 없이 아름답기만 한 생각일 뿐입니다. 막상 아픈 날이 이틀만 넘어가도 '아직도 아파?' 라는 질문이 바로 날아듭니다. 뭐했다고 벌써 귀찮아져서 저러는가 싶어 오히려 더 서럽습니다.
그러나 혼자 아프면 화장실이 초토화가 돼 있어도, 정리를 못해 집안이 난장판이 돼 있어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니 몸은 아파도 속은 편합니다.
물론 배우자가 있다면 그가 치워주긴 하겠지만, 언제 '아직도 아파?' 소리가 나올지 몰라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집이 이 모양이면 싫기는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병든 몸뚱이를 일으켜 그가 오기전에 제가 치우고 맙니다.
아마 아플 때 서러울 것을 대비해 결혼하는 것은 남성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인 듯 합니다.
그러니 특히 여성분이라면, 아플 게 서러울까봐 혼자 사는 것을 피할 이유는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플 때는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합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운전을 못하면 택시를 부르면 될 일이고 그것도 안 되는 상황이면 119를 부르면 됩니다.
무엇보다 옆에 누가 있어준다고 아픈 게 더 일찍 낫는 것이 아닙니다. 드러누워 아픈 몸뚱이를 감각하면서, 이것이 존재하는 것이로구나,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 혼자 사는 반백수는 아파도 괜찮습니다
사실 아플 때 나를 가장 서럽게 하는 것은 그럼에도 돈을 벌러 가야하는 상황이지, 배우자가 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반백수가 혼자 살면서 아픈, 지금의 제 상황이 최상의 와병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아플 때 서러울 것을 생각해서 배우자를 구해야겠다는 약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집에 햇반과 포카리스웨트나 항시 상비해두시기 바랍니다. 그 두개만 있으면 한 이틀 발열과 오한에 시달려도 안 죽고 기운을 내서 병원에 가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원래 자주 아픕니다. 늙어서 그렇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면 그다지 서러울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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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00375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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