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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n 13. 2023

아기와 나와 기승전 글쓰기

[노파의 글쓰기] 집들이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얼마 전에 6개월 아기가 사는 집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집 바질 오자매가 7개월 됐으니, 아기는 우리집 바질보다 동생입니다. 이 정도 월령의 영아는 가끔 길거리에서 유모차에 누워 있는 것을 흘깃 본 것 외에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기념으로 아기에게 바질 언니를 선물했습니다. 목질화가 된 바질이니 아기가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잘 버텨줄 겁니다.


전에 모든 사람들에겐 한 가지씩 초능력이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초능력은 아기들이 절 좋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아기와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절 보고 우는 아기는 본 일이 없습니다.


제가 피리부는 사나이였다면 그 분야의 1인자가 되었을 것이나 개인적으로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것들은 아동 유괴범으로 저잣거리에 효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라 재능을 숨기고 사는 중입니다.


역시나. 언니네 아기도 잠에서 깨자마자 절 보고 방긋 웃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기저귀를 갈려고 수레로 강제 소환된 와중에도, 계속해서 저를 쳐다봅니다. 귀여워 죽겠습니다. 언니는 신기해하며 아기와 동물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무척 고마운 말이나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뭔가가 있지.


6개월이 된 인간은 완전하게 순수한 감각 덩어리입니다. 배불러서 좋고, 눅눅해서 싫고. 이유식은 맛있는데 입이 작아 한 번에 많이 들어오지 못하니 싫고. 그래서 좋다고 팔은 바둥거리면서도 얼굴은 잔뜩 찌푸립니다. 아직 인지 능력이 발달되지 않아 현상을 이해할 수 없으니 오직 '좋다', '싫다'만 감각할 뿐입니다.


또 수치심이나 예의같은 것도 학습하지 않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먹으면서 쌉니다. 엉덩이 씻겨주는 걸 제가 옆에서 지켜봐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정말 작고 순수한 인간입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을 텐데, 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궁금한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가, 아주 잠깐, 정말 10초 정도, 엄마가 눈에서 사라지자 으악!하고 오열을 했습니다. 제 눈에만 안 보였을 뿐, 언니는 아기의 바로 옆에서 저를 배웅하는 중이었습니다. 아기가 언니를 찾는 횟수는 갈수록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배도 채웠고 기저귀도 갈았고 놀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으니 엄마의 얼굴이 잠시 보이지 않아도 '좋다'라고 느껴야할 것 같은데, 6시간 내리 울지 않던 아기가 눈물까지 뚝뚝 떨구며 웁니다. 인간은 대체 언제부터 외로움을 감각하기 시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찔해졌습니다.


물론 생존 본능때문에 우는 것일 겁니다. 아기는 엄마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으니,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게끔 시스템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기는 스스로 밥을 먹고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된 후에도 엄마를, 가족을, 사람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서도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어른들은 날 좀 사랑해달라며 연인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외로움은 분명 생존보다 더 지독한 본능인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충분히 건사할 수 있는 50대들이 고독사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지독한 감정을 이렇게 어릴 때부터 느끼게 되는 것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갑자기 모든 인간들에게 연민이 샘솟습니다.


아기가 얼른 글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스리려면 자기 언어를 가져야합니다. 고독하고 외로울 때마다 쓰고 또 쓰면서 스스로 자기 감정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처럼 널뛰는 심성을 지닌 인간이 이 정도 정신을 붙들고 사는 것도 다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승전 글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써야 합니다. 부지런히 쓰고 익혀서 저부터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ps. 요즘 친한 엄마들이 아기가 크면 글쓰기를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얼른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욕도 안하고 분노 조절도 좀 하고..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123818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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