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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01. 2023

소도둑의 형상을 한 천사를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슈퍼에 갔는데 복숭아가 너무 멋 부린 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맛있어 보였으나 동시에 비쌀 것 같았습니다.


팻말에는 7,500원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그것은 보나 마나 옆에 나란히 있는 쭈구리 복숭아의 가격일 겁니다. ‘이건 분명 만 원이 넘을 거야. 그럼 너무 비싸단 말이지..’


어제도 커피숍에서 라떼에 스콘까지 사 먹느라 8,500원을 썼으면서 유독 복숭아에 야박하게 굽니다. 소비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들었다 놨다하다가 결국 멋쟁이 복숭아는 포기하고 그 옆에 옆에 있던 3000원짜리 토마토를 한 팩을 집었습니다.


그때 사장님이 오더니 가격표 팻말을 쓱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내가 너무 쪼물락거렸나? 괜히 혼자 눈치를 보며 이번엔 냉장고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쪼물락거렸습니다.


수퍼콘 4개와 별난바 3개를 샀습니다. 아이스크림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정말 제 소비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계산을 하려고 다시 복숭아 매대 앞을 지나가는데, 가격 팻말이 5,500원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 이 가격이면 쭈구리 복숭아라도 살 만한데?’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제가 먹고 싶은 건 멋쟁이 복숭아였습니다. 사는 것도 쭈구린데, 먹는 것까지 쭈구리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계속 쭈굴거릴 것 같았습니다.


“이거 얼마에요?” 저는 확실히 단념하기 위해 멋쟁이 복숭아의 가격을 물었습니다. 사장님이 팻말을 가리켰습니다. “5,500원이요.”


저는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져서는 냉큼 멋쟁이 복숭아 한 팩을 집었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거 팩도 하나에 천 원씩 사서 하는 건데, 그냥 가격 내린 거예요.”


세상에! 사장님은 제가 7,500원이라서 복숭아를 못 사는 줄 알고 가격을 무려 2천 원이나 내렸던 겁니다. 아닌데.. 만 원 넘는 줄 알고 못 산 건데.. 사장님은 아마 제가 엄청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어서 저는 괜히 사기를 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팩이라도 돌려드리려고 계산대에서 주섬주섬 복숭아를 꺼내 봉지에 담았습니다. 계산하는 분도 기꺼이 도와주시는 데, 사장님이 또 참견을 했습니다. “팩 그냥 가져가세요, 갖고 가면 쓸 데 많아, 복숭아 다 먹고 나면 양파 담아도 되고.”


밖에서 담배 피우고 계실 때는 너무 무섭게 생겨서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제 보니 그냥 소도둑처럼 생긴 천사였습니다.


천사 덕분에 지금 제게는 멋쟁이 복숭아 6개와 아이스크림 7개, 그리고 토마토도 한 팩 있습니다. 밥도 안 먹고 오자마자 아이스크림부터 두 개 까먹고 복숭아가 히야시될 때까지 기다리며 글을 쓰는 중입니다. 엄청 신납니다.


다른 분들도 날도 더운데 신나는 일만 가득한 주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13897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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