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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Aug 20. 2023

'예술인 글쓰기'와 K-프레젠테이션 패션

[노파의 글쓰기] 한 달 전 수감자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책을 쓰면 특히 마지막 한 달은 수감자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에 집구석을 나가게 되는 날만을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립니다.


그때부터 오직 해방의 날만을 생각하며 눈에 띄는 온갖 프로그램을 예약합니다. 뭘 하는지는 제대로 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날짜만 맞으면 예약합니다.


드디어 자유인이 되었고, 때맞춰 예약 확인 문자가 왔습니다. 한 달 전 수감자가 예약했던 건 바로, ‘예술인의 글쓰기’라는 강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넉 달 동안 치가 떨리도록 글을 써놓고 또 글쓰기 프로그램이라니.. X같네,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내 표현의 빈약함을 반성하고 ‘얄궂네’로 바꿔말했습니다.


그렇게 얄궂은 강의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됐습니다. 수감자가 낚였다는 것을.


강사는 예술인도 아니었고, 그래서 예술인의 글 같은 건 써본 적도 없고, 다만 회사원을 대상으로 보고서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갑을병정진사오미신유술해 맨 끄트머리에 있는, 실상은 백수나 다름없는, 그래서 평일 오후 한 시에 강의를 해도 문제없이 참석할 수 있는 무직의 예술인 40인을 모아놓고 회사 보고서 쓰는 법이라니… 얄궂네.


계정혜와 팔정도를 쓰면서 지루함을 견뎠습니다.


그래도 안 되겠으면 강사님의 등산화를 보면서, 십여 년 전 스티브 잡스의 운동화 PT 패션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에게 오면서 등산화로 굴절된 것인가? 저것이 일명 K-PT 패션이라는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며 인고의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추 비슷해보인다는, 착시 효과마저 생깁니다.


질문 시간에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왜 예술인에게 중소기업 어린이집 확장 보고서를 분석하게 하시 는 건지,

왜 예술인도 아니면서 예술인 글쓰기 강의를 하시는 건지,

하다못해 예술인을 위한 사업 제안서 작성법이라도 좀 준비하실 수 없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묻지 않았습니다. 강의에 대한 질문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곤란해했기 때문입니다.


강사님, 화가 나서 그렇게 연타로 질문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용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은 화가났던 것도 같습니다. 아주 조금은. 미안합니다.


오늘의 모든 것이 얄궂었지만 가장 얄궂었던 것은 역시, 한 달 전 그 강의를 예약한 수감자 녀석인듯합니다. 나를 가장 조지는 녀석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PS. 어제 이 글을 인스타에 올리자마자 또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은 배추 재배기술을 배우러 가야 합니다.

수감자 진짜 얄궂은 녀석입니다. 얄궂습니다, 얄궂어..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17550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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