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Aug 23. 2023

신내림과 교양인

[노파의 글쓰기] 황인용의 카메라타 방문 후기와 신내림받은 친구 이야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엊그젠 이런 델 다녀왔습니다.

'황인용의 카메라타'라는 곳입니다.

언젠가, 여기 오디오가 그렇게 좋다고 들어서 산 넘고 물 건너서 가보았습니다.


파주가 아무리 바로 옆동네라고 해도, 뚜벅이라면 진짜 산 넘고 물 건너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기본 배차간격이 30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현수막에 적힌 '갓 내린 신에 애기'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찍어보았습니다. ‘갓 내린 신에다가 애기'인 건지, 아니면 신예를 신애로 잘못 쓴 건지, 그렇다면 '갓 내린 신예 애기'라고 쓰고 싶었던 건지 무척 궁금합니다만, 전화해서 물어보면 괜히 제게 살을 날릴 거 같아서 참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내림을 받은 제 초등학교 동창은 어떻게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참 기가 세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우리가 고작 11살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런 것은 그리도 빨리 두각을 나타내는 것인가도 싶고..


그런데 그는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중이떠중이들과 막걸리에 취해 돌아다니던 스무 살 때 그는 이미 신빨 강한 신녀가 되어 할머니 할버지뻘의 신도 무리가 그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으며, 그 덕에 얼마 안 가 논현동에 단독 주택을 마련하였고, 그 후에는 꽤 인기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신빨을 과시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그의 싸이월드에 몰래 접속하여 알아낸 것들인데, 그때 올라온 사진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의 방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장미 융단으로 덮인 침대 메트리스 위에 눈썹 문신이 날카로운 중년 여성 한 분이 한 무릎을 세운 채 앉아서 담배를 뽁뽁 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진 제목은 '우리 오마니'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가업을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아기도 낳고 잘 사는 것까지 보고 더 이상 싸이월드를 훔쳐보지 않게 됐는데, 오늘 현수막을 보니 문득 그 녀석이 잘사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한낮의 헤이리에 도착했습니다. 땀을 육수처럼 뽑아내며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카메라타.

가운데 작은 철문을 밀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디오는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근사했지만, 규모는 상상한 것보다 작았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해야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커피와 밀크티 등 차림이 간소하고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음료값이라기보다는 음악감상 비용입니다.


마을버스 기사님이 혹시 저를 못 보고 지나칠까 봐 메뚜기 색 바지를 입고 온 저는 밀크티를 시켰습니다. 이날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었습니다.


이 카페 오디오에 대한 설명은 <월간 오디오>의 기사로 대체하겠습니다.

음악을 재생하는 시스템은 3가지의 기본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웨스턴 일렉트릭 시스템으로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눈길을 끄는 15A 혼이 555 드라이버가 장착되어 천정에서 드리운 체인에 매달려 있다. 이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4181 우퍼와 597A 트위터가 추가되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 3개의 유닛 모두가 다 전자석을 사용한 유닛이라 자기회로를 위한 전원부가 필요하게 되는데, 영구 자석을 사용하지 않은 전자석을 사용하는 유닛인지라 강력한 자기 회로와 이 때문에 얻어지는 높은 능률의 사운드는 오디오 기기의 원점이라고 할 정도로 감동의 사운드이지만 3개의 유닛에 각각의 전원부를 마련하고 이것이 스테레오가 되면 총 6개의 전원 공급 장치와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4벌이 추가되어야 하는 매머드급 시스템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일반 오디오파일들은 꿈에서만이 그려보는 시스템이 되고 만다. 이것을 이렇게 균형 잡힌 상태로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그러한 행운을 이처럼 가까이에 접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주인장은 아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월간 오디오(http://www.audioht.co.kr)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매머드급 시스템의 균형 잡힌 사운드를 듣기 위해 장장 한 시간 40분에 걸려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를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제 귀가 막귀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확 터진 소리를 좋아하는데 어쩐지 동그랗게 오므라드는 오르간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신청곡을 받지도 않고, 음악은 클래식만 틀어주며, 무슨 곡인지는 한쪽 구석에 세워 둔 칠판 앞에 놓은 시디 커버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칠판에 곡명을 쓰는 것도 귀찮아서 커버 세워두는 것으로 대신한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밖에선 맴맴맴맴 으아아아악, 하고 매미가 목청이 찢어지게 울어댑니다. 어쩐지 매미 쪽에 마음이 더 끌려갑니다.


시간제한은 없으나 일반 카페처럼 수다 떠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두 시간 이상 있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월요일 오후에 헤이리까지 음악을 감상하러 오는 운 좋은 놈팽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구경하는 재미는 있습니다. 한 놈팽이는 메뚜기 색 바지를 입고 땀을 줄줄 흘리고 와서는 뜨거운 밀크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다 놀았다.

이제 철문을 열고 나가는데 제 뒤를 따라 나오던 노부부 중 남편이 말합니다. "매미 소리가 더 낫네."


아니, 선생님! 이 매머드급 시스템의 균형 잡힌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황인용 씨가 수년간 얼마나 노고를 들였는데, 그런 망발을!! 이라는 생각보다 어쩐지 '동감'이라는 두 글자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막귀들의 무지한 반응에 대해서는 일찍이 월간 오디오 기자도 우려한 바 있습니다.


이제 카메라타의 시스템은 안정이 된 것처럼 아주 편안한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편안하게만 보였다.


모릅니다, 몰라요!

거, 한심하게만 보지 마시고, 두 시간 걸려 여까지 와서 그 좋은 소리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 막귀를 좀 불쌍히 여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며칠 전 배추재배기술 수업에서 본듯한 대도시 농부가, 땀에 전 양말이 거추장스러웠는지, 그 자리에서 양말을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제 앞에서 자랑스럽게 맨발을 쫙 펼쳐 보였습니다.

나가 죽어.


나의 교양 수준이란 것은, 매머드급 시스템의 균형 잡힌 사운드와 농부가 지하철에서 벗어제낀 땀에 전 양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위축될 것도 젠체할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사는 수밖에요.


비가 또 옵니다. 우산 잘 챙기시고, 화내지 마시고, 여러분도 계시는 자리에서 묵묵히 잘 살다 오십시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190028075

#노파의글쓰기수업 #노파의글쓰기 #글쓰기 #글잘쓰는법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실용글쓰기 #감성글 #감성글귀 #황인용 #카메라타 #황인용의카메라타 #파주카페추천 #신내림 #애기보살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의 사생활> 과 작가의 사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