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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Sep 01. 2023

이래서 놀란, 놀란 하는구나, 오펜하이머!

[노파의 글쓰기] 오펜하이머 리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오펜하이머를 보았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면,

무조건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소리가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지적입니다. 인간과 우주와 돈과 진리를 전부 담아내어 곱씹어볼 것도, 이해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한 마디로 놀란이 또 놀란했구나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줄거리를 말하면, (스포는 2차 대전이 스포입니다)

천재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 너머의 진리를 찾던 한 천재가 지상에서 진리의 일부를 구현했고, 그 일부의 진리가 태평양 너머 섬나라 사람 30만 명을 죽이는 데 사용됐으며, 그 덕분에 미국의 청년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인류 파멸의 문도 함께 열리게 됐습니다. 그 일로 오펜하이머는 큰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우주 천재의 반대편에는 세속의 천재가 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루이스 스트로스입니다. 구두를 팔다가 월가에 입성하고 정계에까지 진출하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자본주의 세계에 사는 우리 모두가 경원해 마지않는, 맨주먹으로 돈과 권력의 탑을 쌓아올린 자수성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재 vs 범인(凡人)

그런 그를 향해 오펜하이머는 lowly shoe salesman (천한 구두팔이)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세속의 돈과 권력을 좇는 스트로스는 미천하고, 심지어 멍청해보입니다. 그래서 청문회 때 그렇게 그를 공개적으로 깔보고 비웃었던 겁니다.


그러나 세속에는 세속의 법이 있고, 스트로스는 그 법의 권위자며, 굴욕을 당한 이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이 원한에 가득 찬 세속의 천재의 손에 끌어내려집니다. 그냥 끌어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난 삶이 분 단위로 공개되어 난도질 당하다가 한순간에 구국의 영웅에서 빨갱이 불온분자로 낙인찍히며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과 나눈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 끝없는 추락을 묵묵히 견디기로 합니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 그리고 이름 없는 '그들'

그날,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는 오래도록 스트로스의 열등감을 자극했습니다. 분명 자신에 대한 나쁜 말이 오갔을 거라고 늘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대화에서 스트로스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재들에게 이 세속의 행정가는 이름 없는 '그들' 중 한 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진리를 추구하고,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의 진리를 추구하지만, 스트로스는 이미 오래전에 그 속성이 밝혀진, 돈과 권력을 진리로 삼습니다. 천재들에게는 그게 경멸스러운 겁니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늘 더 큰 돈과 더 센 힘을 얻기 위해 진리에 눈 감고 천재들을 억압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얼마 안 가 다른 사람에게 대체됩니다. 끊임없이 누군가로 대체되는 그 자리에는 사람은 없고 돈과 권력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체성을 갖지 못하고 단지 '그들'로 칭해집니다. 그날 아인슈타인이 무심하게 스트로스를 지나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곧 누군가에게 대체될, 지루하고 뻔한 '그들'에게 단지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실제로 스트로스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장관 청문회에서 끌어 내려져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됩니다. 그것으로 그의 정치 생명은 영원히 끝나고 맙니다. 그저 오펜하이머를 억압했던 악인으로 간신히 역사에 한 줄 기록될 뿐입니다.


이토록 복잡한 오만함

분명 오펜하이머는 문제적 인물입니다. 젊었을 땐 자신을 무시하는 지도 교수를 독살하려 했고, 다른 교수는 강의를 못한다며 끌어내리고 자신이 직접 강의를 한 일도 있습니다. 오만하고 잔인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교수들의 노조를 만들려고 했고, 노동자들의 시위를 지지했고, 스페인 내전 난민들을 위해 돈을 보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후에는 자신의 모든 영향력을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분명,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입니다.


즉 그의 오만함과 잔인함은 선택적입니다. 스트로스의 자수성가는 천하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자수성가는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의 경멸과 연민 사이에는 분명 복잡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복잡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힌두교 경전을 원어로 즐겨 읽고, 공산주의자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기꺼이 유부녀의 네번째 남편이 되고, 지구 전체를 날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놓고서는 국가의 무기 개발 정책은 반대합니다. 그러느라 자신의 모든 업적을 빨갱이의 이적 행위로 만드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복잡한 한 인간의 천재성, 유약함, 예민한까지 매력적으로 담아놓았습니다. 그의 마른 몸까지, 모든 것이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한 명의 천재는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입니다. 이토록 복잡한 인간의 생애를 두 개의 청문회라는 구성을 통해 천재와 범인(凡人)의 구도로 보여준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만 모든 공력을 쏟아부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더해 섭외에, 연출에, 음악에, 연기지도에, 편집까지 모든 것을 감독했습니다. 대체 이 에너지가, 이 창의성이, 이 집요함이 어떻게 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범속한 인간의 대표인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랑을 모르네

완벽하게 잘 짜여진 이 영화의 딱 한 가지 균열은 바로 진 태틀록과의 에피소드입니다. 장은 오펜하이머의 평생의 사랑이었다는데, 영화에서는 온통 성욕밖에 없습니다. 일생의 사랑이라고 할 때는 섹스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사랑이 뭔지 모르나, 놀란? 나도 모르니 패스.

플로렌스 퓨가 아직도 서른이 안 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불닭발집을 30년 정도 운영한 사장님의 포스입니다


어렵지만, 충분히 머리를 쥐어짜며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강추드립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19108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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