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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Nov 13. 2023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하며 내게 명함을 주었다

[노파의 글쓰기] 재건축 아파트의 추억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친한 언니가 책을 여러 권 샀다고 해서 사인을 해주러 오랜만에 금천구에 갔습니다. 금천구는 제가 일산에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입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제가 살던 곳이 보입니다.     


저는 저것을 준주거시설이라고 부릅니다. 집과 비슷하지만 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가을까지만 집이고 11월부터는 집이 아닙니다. 저곳에 살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제 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한파가 왔다 하면 600세대 중 거의 300세대의 계량기가 터졌고, 저는 고작 두 번의 겨울을 났을 뿐인데 무려 다섯 번의 계량기 동파 사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여기 오기 전까진 계량기가 무슨 기능을 하는 물건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 겨울 아침, 출근을 하려고 물을 트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처음 계량기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생수를 끓여 머리를 감으면서도 이것이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곳에서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서는 1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온수와 냉수를 줄줄 틀어놔야 합니다.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집에서 종일 물 새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망해가는 집구석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심란해집니다.      



그런데 온수를 틀 때와 냉수를 틀 때 물의 색이 다른데, 그 이유는 온수를 틀면 엄청난 미네랄이, 그러니깐 녹물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가시면, 그때부터 찬물을 받아 물을 끓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5시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유연 근무제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준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전기 포트 두 개의 스위치를 올려 물을 끓인 다음 대야에 받습니다. 이 일을 두 세 번 반복하여 뜨거운 물이 대야에 충분히 모이면 욕조에 있는 찬물과 섞어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합니다. 80년대 달동네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거라도 문제없이 됐다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저는 이 아파트의 맨 끝 집에 살았기 때문에 상황이 더 열악했습니다. 어떤 날은 영하 5도에도 계량기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일산의 아침 기온이 영하 4도였는데, 운이 나쁘면 오늘 같은 날에도 계량기가 어는 겁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로 계량기가 얼었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재개발? 씨바꺼, 내가 해줄게' 하면서 망치를 들고나와 아침부터 복도 바닥에 앉아 깡깡거리며 얼음을 깼습니다.


요란한 소리에 옆집 아저씨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습니다.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오함마를 들고 나와서는 말없이 제 옆에서 같이 얼음을 깨줬습니다. 무척 고마웠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이웃 간의 정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외벽 콘크리트마저 기꺼이 몸을 던져 자살을 하는, 안방에서도 입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43년 된 이 지옥 같은 중앙난방식 아파트에 살게 된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입니다.     


오피스텔을 전전하다 보니 집이 갖고 싶어졌고, 집을 사려면 월세를 아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전세가 가장 싼 아파트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던 겁니다.     

들어가는 입구, 우리집 복도 입구, 입주민들이 담배 피우고 침 뱉는 곳


형편없는 집에 산다고 사는 것도 함부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도 꾸며보고 저렇게도 꾸며봤으나 그저 뭘 해도 안되는 집구석이었을 뿐입니다.     

저 진짜 노력 많이했습니다


사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가을이라, 단풍이 제법 예쁘게 들었길래 2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약한 인간이었고 2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탈출하듯 지금 살고 있는 일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오직 탈출에만 전념하여 하루 14시간씩 원고를 쓰며 종잣돈을 마련한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유사 아파트가 제게 꼭 나쁘게만 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접 망치 들고 설쳐서 만든 지금의 공간

 

어제 만난 언니는 제가 이 준주거시설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때에 알게 된 사람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이상한 만남이었는데, 언니는 제가 집을 내놓았을 때 집을 보러 온 사람의 지인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언니는 저를 한눈에 마음에 들어했고,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서 명함을 주더니, 언제 한번 같이 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처음엔 성 소수자인가 싶었고, 두 번째는 내 장기를 탐내는 건가 싶었습니다. 언니는 성 소수자도 아니었고 제 장기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저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은 언니를 만나며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종종 와인을 사 들고 우리 집에 놀러 왔고, 그럼 저는 보드카와 탄산수로 맞아주었습니다. 언니를 통해 사람이 정말 선의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금천구에 있었던 마지막 3개월이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냈다고 하니 책을 무려 열댓 권이나 샀다고 하여 어제 급히 금천구로 출장사인회를 갔던 것입니다.     


언니가 책을 선물할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에 쭉 적고, 그 사람들과의 인연을 한 명씩 설명하면, 저는 그 이야기에 맞춰 '동생 같지만 어쩐지 언니 같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시켜준' 누구누구님께 책을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는 식으로 작은 편지를 썼습니다.     


악필 때문에 받는 사람이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언니의 인연들을 알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고, 개인적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곱씹을 수 있어서 감회가 남다른 하루였습니다.     


PS.

이봐, 자네는 12년 후에 콘크리트가 덩어리째 추락하는 아파트에서 오함마를 든 노인과 바닥에서 얼음을 깰 운명이라네.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놀아두시게.     

제게도 고생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지금은 완전 다르게 생겨서 신변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올려봅니다. 저땐 세상이 제 맘대로 되는 줄 알았는데, 인생 참 괴랄합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60948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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