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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Nov 27. 2023

책 처음 내 본 사람의 옹졸함

[노파의 글쓰기] 막상 책을 내면, 책 한 권밖에 안 낸 티를 냅니다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오늘은 서점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서점에서 제 역할은 점점 행사 도우미가 되어갔는데, 

마지막 행사는 하우스 콘서트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공연장 문 앞에서 달달달 다리를 떨고 앉아 있다가 손님이 오면 명단을 확인하고 전단지를 들려서 안으로 들여보내는 겁니다. 

나이트 수문장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제법 능력 있는 수문장이라고 자부합니다. 



공연장 안팎을 들락거리는 틈틈이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그들의 대학 시절이 얼마나 근사했을지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 시절, 저 같은 문과생에게 음대생은 마치 닿을 수 없는 환상의 존재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토요일 아침부터 엘사와 백설공주와 미녀(와 야수) 복장을 하고 연주를 하는 그들을 보니 갑자기 울컥, 하고 동지애가 솟아오릅니다. 


동무들, 힘내시라요! 


그러다 문득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서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책을 냈다는 사실도 떠오릅니다. 내 책을 구경할 수 있겠군!


저는 부리나케 매대 사이를 돌아다니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 새끼 어딨나? 응답하라 어글쉬!


그러나 어디서도 응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제가 행사 도우미로 전락했다지만, 그래도 두 달 넘게 일한 정이 있는데, 제 책도 매대에 좀 놔줄 순 없었던 겁니까?


저는 서운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검색대로 향했습니다. 


화면에 '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를 입력했더니 너무도 단호하게 알림이 떴습니다.

"검색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저는 이번에는 제 이름을 입력해보았으나 이렇게 많은 수지들 사이에서 제가 찾는 그 수지는 없었습니다.     


저는 몹시 섭섭했고,

실장님은 지역 서점은 팔릴만한 책만 골라 들여와서 그런 거라고 저를 달랬으나 저는 그 말이 더 섭섭했고,

그래서 같이 먹은 밥도 체했고(심지어 내가 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배를 부여잡은 채 섭섭해하는 중입니다.


그게, 말이지요, 첫 책은 좀, 그렇습니다.

친구가 책을 안 사서 섭섭하고, 

지인에게 책을 보내줬더니 안 읽어서 섭섭하고, 

읽으면 또 서평을 안 써줘서 섭섭합니다. 

사람이 말할 수 없이 옹졸해집니다. 


그 와중에 편집자님한테 책 많이 팔아서 보너스 받게 해드리겠다고, 뻐꾸기는 왜 그렇게 날렸던 건지..

말을 주워 담기 위해 아기 신발을 한 켤레 장만했습니다. 실은 다음 달에 편집자님이 출산을 해서 뭔가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는데 겸사겸사 잘됐습니다.


아가야, 이모가 수문장으로는 꽤 출중한 사람인데, 

작가로서는 영 신통찮단다. 

그러니 이 신발을 신고 못난 이모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주렴. 


그리고 사는 건 꽤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안에 소소한 기쁨이 많이 있단다. 

그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건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세상에 온 걸 환영해.



PS. 

서점 인턴십은 정부 운영 프로그램이라 정작 서점 사장님은 몇 번 뵙지도 못했습니다. 부디 사장님이 야박하다고 생각지 말아 주시기를요.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6951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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