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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Dec 23. 2023

혼자 떠나기에 최고의 여행지, 군산 - 식도락 편

[노파의 글쓰기] 군산여행 1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이틀 전에, 군산에 눈이 60cm 내리던 날에,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시외버스를 타야 했기에 혹시 이번 시즌 눈길 교통사고의 당첨자가 내가 되진 않을까, 이만저만 심란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갔습니다. 학교에서 이미 열흘 전부터 학생들에게 특강 홍보를 했고, 또 저는 명줄도 긴 편이라, 이번에도 저승사자를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서해안 도로에서 8시간을 왕복하는 동안 무려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눈길 여행이라는 것이 무슨 룰렛 게임인가 싶어 모골이 송연해지는데, 다치신 분들 빠른 쾌유를 빌고, 돌아가신 분들껜 명복을 빕니다ㅠ


그렇게 목숨 걸고 내려간 군산에서 저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화려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먹었는데, 일단 식도락 이야기부터 해드리겠습니다.


고작 1박 2일 있었습니다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군산은 어딜 들어가도 맛집입니다.


1. 군산 보리터

군산에도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는 빵집이 있습니다. 이성당이라고. 서울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강의 전이라 가볍게 요기만 하면서 강의안을 연습하고 싶어서 군산 보리터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노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빵을 직접 만들어서 팝니다.가장 미는 품목은 호두과자이지만, 저는 단호박 카스테라를 선택했습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재료를 막 쏟아부어 만든 것 같았습니다. 엄청 묵직하고 정직하고 막 성령이 깃든 맛이랄까? 암튼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어 왜 그런가 했더니, 공간의 모든 곳에서 저희 모친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여자 사장님이 ‘우린 재료 고급진 걸로만 써요’라고 할 때, 이것이 전북이라는 지역의 특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원 출신인 저희 어머니도 ‘고급진’이라는 말을 무척 애용하고, 이런 아기자기하지만 제 취향은 아닌 소품들을 잔뜩 늘어놓는 것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인테리어한 거 아니지?


따뜻하고 다정하고.. 이곳의 모든 것들이 좋았습니다.


2. 한일옥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대체 소고기뭇국이 얼마나 맛있길래 일산에 사는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이냐, 하는 심정으로 찾아갔고, 한 입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어? 이거 왜 맛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평범하게 생겼는데, 진짜 진하고 맛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국에다 밥 한 번 먹이려면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 애녀석 출신으로, 한식을 많이 못 먹습니다.


최선을 다해 깨작거렸지만 결국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3. 이성당

그 유명한 이성당입니다.

단팥빵과 야채빵이 유명합니다.


저는 깨작거리기 대왕이라 맛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걸 미리 언질을 드리고 말씀드리자면, 그냥 단팥빵 맛이었습니다.


폭설 때문에 줄이 없어서 망정이지, 한 시간 기다린 끝에 얻어낸 맛이 이것이었다면, 꽤 화가 났을 것 같은, 그런 익숙한 맛이었습니다.

단팥빵과 야채빵 하나씩.

다만 내부 까페가 잘 조성돼 있어서 어딘가 좀, 미국 식당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폭설 덕분에 사람도 없어서 전날 산 책을 읽으면서 빵과 커피를 먹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접시도 없고, 쟁반에 까는 유산지도 없어서, 비닐에서 빵을 꺼내 먹어야 하는 비참함이 조금 있습니다.


4. 지린성

군산에 오면 꼭 한 번 들러야 한다는 짬뽕 맛집입니다.


불맛 짬뽕이 유명한데, 저는 일반 짬뽕을 시켰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청년 둘이서 불맛 짬뽕을 시켰는데, 한 술 뜨자마자 ‘조됐다’를 연발하는 것을 보니 일반 짬뽕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운 음식 앞에서는 객기 부리면 안 됩니다. 일반 짬뽕도 충분히 맵습니다. 건더기가 푸짐한 것은 좋은데, 조미료도 푸짐하게 들어간 맛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저는 맛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고, 그럼에도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냥 나쁘지 않은 짬뽕 맛이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평을 말씀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날 지린성에서 짬뽕을 앞에 두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르는 여자를 본 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화장실에서 막 세수를 하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짬뽕을 먹으러 와서 세수부터 한 이유는 오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대형화물트럭이 왕, 하고 속도를 올려 달리는 바람에 시커먼 눈죽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썼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날 군산 시내에서 흙탕물을 뒤집어 쓴 여자가 시발시발하고 가는 것을 보신 분들이 있다면, 너른 양해 구합니다.


날이 무척 추웠고, 똥물에 머리카락이 다 젖고, 마스크까지 버려야 했는데, 욕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


다 먹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볼거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9883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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