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글쓰기] 무김치 만들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무는 정말 좋은 식재료입니다. 1500원짜리 무 하나면 제일 큰 김치통 하나를 꽉 채울 수 있습니다.
저는 무김치를 정말 좋아합니다. 다른 모든 음식은 거의 조사먹는 편이지만, 무김치만은 주먹만 하게 잘라 먹습니다. 무를 입안 가득 베어 물고 어금니로 아그작아그작 씹어먹는 쾌감이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무김치라고 쓰는 이유도 깍두기라는 단어는 무의 기상과 대범함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깍두기는 어딘지 좀스러운 자들이나 먹는 음식 같습니다. 물론 저는 좀스러운 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무를 먹을 때만큼은 대인배입니다. 볼이 미어지게 밀어놓고 철근같은 이빨로 와작와작 씹어먹습니다.
전에 모 작가님이, 자신은 입에 꽉 찰 정도로 음식을 큼지막하게 썰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 때, “우리 작가님 엄청 섹시하시네” 라고 했다가 돌이킬 수 없이 음란마귀로 몰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와 지금은 경우가 다릅니다.
그땐 가지 튀김이었고 지금은 뭅니다. 가지는 연약하지만 무는 혁명적입니다. 어금니의 빛나는 기상으로 무의 단단한 육신을 한 면씩 무너뜨릴 때마다 우리는 혁명을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지는 부르주아입니다. 느물거리고 색깔도 보루딩딩한 게 어딘지 퇴폐적이기까지 합니다. 혁명의 기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와 지금은 경우가 전혀 다릅니다.
제가 무를 사랑하게 된 것은 막걸리 덕분입니다. 최근에 준비 중인 글쓰기 강의는 조금 독특하게 건축가와 함께 진행하는데, 전달받은 원고를 보니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도 그 건물을 잘 압니다. 왜냐면 대학교를 다닐 때 늘 그 건물을 지나쳐 ‘동학’과 ‘임꺽정’으로 막걸리를 마시러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알지만, 실은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그 안으로 들어가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하고, 더 극적인 체험을 하느라 그랬습니다.
그 체험이란 것은 바로, 막걸리와 무김치의 혁신적인 콜라보를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메인 안주는 두부김치였지만, 저는 그런 흐물거리는 녀석들보다 곁들여 나오는 깍두기를 씹으며 막걸리를 넘기는 것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미술관에 걸린 죽은 그림을 보는 것보다 몇배는 더 생생하고 몇 배는 더 극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스무살 때는 원래 이런 살아있는 경험을 해야하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부자들은 왜 마약 같은 것에 돈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강남에 막걸리와 무김치를 풀면, 마약 사범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보다 막걸리-무 콜라보에는 드라마틱한 피날레가 있습니다. 우리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막걸리와 무와 두부 김치를 밀어 넣은 후에 늘 녹두거리로 나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민중이 우리에게 원한 건 죠슬 깡비가 아니었어요~”로 시작해서 “뚜어정, 뚜어정”으로 끝나는 노래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인문대는 학부로 신입생들을 뽑아서 각 학과에서 운영하는 반으로 학생들을 임의 배정했습니다. 저는 중문반에 당첨됐습니다. 그래서 막걸리만 마시면 저렇게 길거리에서 중국어가 섞인 혁명가요를 불러댔던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개입니다만, 막걸리를 먹은 순간만큼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무는 혁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문학과 출신은 늘 문송해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찌르면 피가 아니라 자의식이 나오는 오만한 인간들입니다. 조금도 문송하지 않습니다. 일찍이 가난해도 콧대 세우고 사는 법부터 배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모양인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문학과로 가십쇼.
아니면 혁명의 무를 드십쇼.
그러면 주말에도 일하는 주제에 혁명가인 척 살 수 있습니다.
뚜어정!
(참고로 뚜어정은 투쟁의 중국어로 추정됩니다. 저도 중국어는 잘 모릅니다. 2학년 때 노어노문학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어도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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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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