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Jan 22. 2024

다들 자기는 안 비굴할 줄 안다

[노파의 글쓰기] 슬픔의 삼각형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원고를 무사히 마감한 기념으로 재작년부터 별러둔 영화를 봤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입니다. 2022년에 칸 친구들이 <헤어질 결심> 대신 황금종려상을 준 작품입니다. 감독은 루벤 외스틀룬드, 스웨덴 사람입니다. 


그리스 사람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누가 신화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 아니랄까 봐 그리스 감독들은 근친이 우스워지는 소재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심호흡을 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이해 가능한 범주의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입니다. 잔혹한 범죄가 안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막 소랑 하고, 개가 되고, 이런 건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다 외스틀룬드는 점잖게도 블랙코미디로 호를 날리는 양반이라고 하여 마음 놓고 봤습니다. 그러다 작은 코 다쳤습니다. 전혀 점잖지 않은 영화입니다. 비위가 약한 분들은 부디, 식전에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롭게 그려낸 지점은, 권력이 바뀔 때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니다. 


센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람들은 태도가 바뀝니다. 


저도 얼마 전에 우체국에 갔다가 옆에서 언성을 높이는 진상이 거구의 누님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시선을 거뒀습니다. 턱과 허리가 절로 숙어졌습니다. 


45킬로도 안 되는 사람이 정의 구현하겠다고 80킬로쯤 돼 보이는 언니한테 막 눈 치뜨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사실 언니의 매콤한 호통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절로 예의가 발라졌습니다. 55킬로쯤 돼 보이는 여자도, 65킬로쯤 돼 보이는 남자도 다들 언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른 무관심을 유지했습니다. 


우리가 비굴해서 싫습니까? 이해합니다. 그러나 권력의 우위를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낀 언니가 일찍 자리를 뜬 덕에 그곳에 있던 누구도 맞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안 맞을 수 있다면 열 번이고 비굴하겠습니다.



영화에서도 인물들은 센 사람 옆에서 비굴하게 굴고 알랑방귀를 뀝니다. 그리고 센 사람은 기꺼이 그들의 굴종과 친절을 즐깁니다. 


초호화 유람선을 배경으로 한 이곳에서 센 사람은, 부자 승객입니다. 개중에서도 배가 잔뜩 나온, 늙고 못생긴 백인 남성이 이 세계의 가장 센 사람입니다. 


전 직원이 그의 말에 복종하고 섹시한 여자가 그의 침대 시중을 듭니다. 같이 배에 탄 그의 아내는 이 상황을 모르는 척합니다. 옆에서 부를 누리고 살려면 굴종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가 난파되면서 ‘센 사람’ 바뀝니다. 돈이 쓸모없어진 상황에서 부자는 더 이상 센 사람이 아닙니다. 


무인도에서 센 사람은,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전날까지도 승객들의 변기를 닦던, 필리핀 출신의 노동자, 아비가일입니다. 


권력이 이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는가? 이게 영화의 가장 재밌는 볼거리입니다. 


영화 초반에, 밥값을 나눠 내지 않는다며 여자친구에게 남녀 평등을 외치던 남자, 칼이 제일 적극적으로 아비가일에게 살랑거립니다. 먹을 것을 좀 더 얻기 위해 그녀의 침대 시중을 드는 겁니다. 

여자친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지만, 참습니다. 아비가일의 음식을 얻어먹으려면 굴종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음식과 편안한 생활을 위해 몸을 파는 칼을 조롱하지만, 원래 센 사람이었던 백인 부자는, 같이 놀리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뭐 어때서?’ 


이때 제게 어떤 것들이 깨달아졌습니다. 


사치스럽게 살려고 늙고 배 나온 남자 옆에서 살랑거리는 섹시한 여자와 편하게 살려고 늙고 못생긴 여자 옆에서 알랑거리는 미끈한 남자, 그리고 줘 터지지 않기 위해 센 언니 옆에서 비굴하게 눈을 내리까는 나 사이에는, 물론 우리의 비굴함은 층위가 나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 기저에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분투입니다. 그 분투가 우리 셋을 ‘슬픔의 삼각형’으로 이어줍니다. 


굉장한 영화군.

이쯤 되면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죽였겠죠.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인간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미친 짓을 하니까요. 


그러나 저는 영화 덕분에 제가 멸시하던 한 부류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분들이 열심히 시술도 받고, 열심히 아첨도 떨어서 부자들에게서 많은 콩고물을 얻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참 열심히 사는 인생입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326839626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슬픔의삼각형 #황금종려상 #루벤외스틀룬드 #굴종  #비굴 #열심히살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