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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Feb 28. 2024

자기계발의 끝판왕

[노파의 글쓰기] 냉장고 관리의 비밀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독립해 살면서 제일 첫 번째로 느꼈던 당황함은, 냉장고 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계란이 떨어졌고, 어느 날은 양파가 떨어졌습니다. 고기, 마늘, 우유, 치즈, 양배추, 완두콩, 커피, 빵 따위가 부족함 없이 늘 적당량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일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저글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냉장고를 채우고 나면 다음 날부터는 이것들이 썩기 전에 먹어치우는 일에 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먹으면 채워야 하고, 채우면 먹어치워야 하고. 


홀리 마더.. 내가 고작 고기와 마늘, 양파 따위와 평생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엄마는 지금까지 무려 40년 동안, 4인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이렇게 관리해왔다는 것인가?


인간이 책만 보고 글만 쓰며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지독하게 불합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턴 아무리 근사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을 봐도, 자기 먹거리 하나 건사 못하면 손 많이 가는 애녀석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라클 모닝은 얼어죽을, 냉장고 관리야말로 진정한 자기계발의 요체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냉장고 관리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인식입니다. 이혼한 50대 남성들이, 사별한 80대 남성들이 냉장고 관리 기술이 없어서 조기 사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1인 가구가 기준이 된 시대에는 세금, 연금 지식과 함께 냉장고 관리 기술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엄하게 가르쳐야 할 초특급 생존 스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냉장고 관리에 관한 몇가지 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냉장고 관리의 핵심은 음식 재활용입니다. 

다들 음식을 남기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그래서 음식을 안 남기려고 억지로 먹어치우느라 살이 찌고, 아니면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느라 또 일이 느는데, 전부,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 법만 알면 해결되는 일입니다. 


엊그제는 친구들이 집에 와서 회도 먹고 밀푀유나베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 남겼습니다. 회도 남고 초밥은 절반 이상 남고 나베 재료도 남았습니다.


집주인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음식 활용법을 알면, 오히려 음식을 남김없이 먹고 가는 친구들이 미워지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겁니다. 


1. 회-파스타

회는 바로 냉장고에 넣지 말고 올리브유에 잘 구워서 보관합니다. 초밥의 회도, 밥과 분리하여 올리브유에 잘 굽고, 밥은 따로 볶아서 보관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무조건 파스타를 만듭니다. 

트레이더스 회는 두껍고 싱싱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해물 파스타를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마침 얼마 전에 뇨끼를 사둔 게 있어서 해물 크림 뇨끼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남은 해물은 아예 크림소스로 만들어 보관했다가 다음 날 뇨끼만 삶아서 데워먹으면 됩니다. 


2. 소고기-또띠아

다음은 밀푀유나베 부재료입니다. 

먼저 고기는 후추에 잘 볶아서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초밥에서 분리시킨 밥과 함께 볶습니다. 


나베에 쓰고 남은 알배추, 버섯, 마늘도 함께 넣어 볶습니다. 굴소스와 쯔유로 간을 하여 그대로 볶음밥을 해서 드셔도 되고, 또띠아를 만들어 먹어도 됩니다. 


또띠아를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후라이팬에 또띠아를 깔고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 후, 치즈가 녹을 때쯤 볶음밥을 올립니다. 그리고 밥 위에 할라피뇨와 마요네즈와 핫소스를 넣고 착착 감아 먹으면 끝입니다. 또띠아가 잘 타니 약불로 하셔야 합니다. 


3. 체리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에 올리고 남은 체리는 호밀빵 고명으로 활용하시면 됩니다. 

체리는 세상 모든 크림과 전부 궁합이 맞기 때문에 호밀빵에 크림치즈를 발라 그 위에 얹어주시기만 하면 끝.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이 모든 별미들이 지난 주말 한 끼 식사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니 음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음날 이틀 동안 여러분을 든든하게 지켜줄 은인들입니다. 


우리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식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사고 먹고 치우고 관리해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이런 식재료 관리법은 일찍 터득할수록 좋습니다. 


무엇보다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배추를 씻고 무를 다듬다 보면 생의 의지가 샘솟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같은 인간들은 감자랑 계란만 있어도 생존 가능합니다. 


추가로 살도 잘 안 찝니다.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일에는 노동력이 솔찬히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냉장고만 잘 관리하셔도 삶이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다들 유능한 냉장고 관리사가 되어 잘 먹고 잘사시기 바랍니다. 


ps. 이것은 저의 상온 냉장고입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36484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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