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글쓰기] <오늘부터 나를 고쳐쓰기로 했다> 서평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책을 읽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5%는 될 거라던 하루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읽는 일의 재미를 알아버린 인구가 그 정도는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청나게 잘생긴 사람 앞에서 내면의 아름다움 따윈 더없이 하찮은 것이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의 내면이 더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지금 웃는 저 얼굴은 진심일지 아닐지, 알고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남자는 당최 글을 안 썼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쓴 글은 꼭 챙겨 읽었습니다. 그때는 싸이월드라고 불리는 것에 글을 썼는데, 그는 잠자리에 누워서 제 싸이월드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킬킬거리곤 했습니다.
그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내 영혼만 읽히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여 “너도 좀 써”라고 몇 번을 말했으나 그는 끝내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의 내면을 영영 알 수 없었고, 그즈음 저도 쓰지 않게 되면서 정신의 소통이 끊어진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글 따위 안 쓴다고 이혼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렇게 말하면 어쩐지 있어 보여 즐겨 사용하는 문장입니다.
“정신의 소통이 끊어진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고 했을 때, 제가 매우 운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선영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것은 2022년 겨울입니다.
그즈음 방송작가 일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러자 문득 다른 방송작가는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방송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었고 그중 한 권이 선영 작가님이 쓴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였습니다.
문장도 깔끔하고, 표현도 좋고, 내용도 구구절절 공감되어, 무엇보다 저보다 훨씬 고생하며 자리를 지켜온 분이라는 존경심에, 단번에 마음을 주게 됐습니다.
반면 다른 작가님의 에세이는 “내가 바로 억대 연봉 방송작가다”라는 서문으로 이를 갈게 하더니, 이것이 연예인 이야긴지, 작가 이야긴지, 작간데 문장은 왜 이 모양인지 등등을 생각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연하자면, 방송작가는 글을 잘 써야 성공하는 직군이 아닙니다. 특히 예능 작가가 그렇습니다. 이 작가님은 자신의 직군이 요구하는 유능함의 기준에 맞춰 글을 '잘' 쓰시는 겁니다.
아무튼 그런 얘기들을 블로그에 올렸고 한참 후에 인스타라는 것도 시작하게 됐을 때 게시글 어딘가에 작가님이 댓글을 달아주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작가님이 그때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마 작가님껜 그 글이, 그리고 저에겐 그 에세이가 우리 사이의 경계심을 허물고 이미 내적으로 소통하게 했을 겁니다.
그렇게 밥도 같이 먹고 카톡도 주고받으며 작가님과 꽤 친해졌는데, 그래서 서로를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서 역시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으로 만나는 사람의 내면이란 얼마나 깊고 융숭한지요!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건강’에 관한 것만을 담았는데도,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일단 재밌습니다.
‘재미’를 글의 첫 번째 가치로 삼는 제게 더없이 훌륭한 책입니다. 작가님의 강점인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모든 이야기가 그린 듯 쓱쓱 풀려나가는데, 이런 가독성 높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래 앉아 퇴고했을지, 그 허리 통증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토피로 붉어진 얼굴 때문에 위축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학에서는 응원단 활동을 하고, 졸업 후엔 방송작가 일을 하고, 방송작가 일을 하는 와중엔 등산 동호회에 가입해 새벽 6시부터 산행을 합니다.
무엇보다 음식!
이토록 실험적으로 음식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듣도 보도 못한 육식주의 실천과 천연 기름 사수기가 나옵니다.
아직 절반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지금껏 제가 이 작가님을 안다고 말해온 것에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정말 작가님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정말 특이하고 흥미로운 사람이야..
이것은 요즘 당근과 양배추와 호박에 미쳐있는 저의 아침 식단을 찍은 건데, 책을 읽으면 여러분도 자신이 먹는 것을 한번 점검하고 싶어질 겁니다.
재밌고 잘 쓰인 책입니다.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랑받겠지만, 그래도 더 많이 사랑받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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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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