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보냈다.
소설을 보냈다는 말은 원고를 보냈다는 말과는 다르다.
원고는 하루바삐 치워버리고 싶지만,
소설은 제발 하루만 더 붙들고 있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시원한 마음으로 보낸 적이 없다.
그렇게 애끓는 마음으로 보낸 내 새끼는 언제나 능욕당했다.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그 생각만 하면 몹시 울컥해져서 바주카포를 둘러메고 찾아가고 싶어진다.
너야? 내 새끼 휴지통에 던진 놈이?
그럴 수 없어 능욕 당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이의 책을 들고 나왔다.
아마 두 달 전쯤에 이 책에 대해 쓴 것 같은데 아직도 다 읽지 않았다.
재밌는 책을 다 읽어버리는 것은 너무 섭섭한 일이어서 일부러 조금씩 남겨둔다. 작년 봄에 읽은 <시녀 이야기>와 <속죄>도 딱 이만큼 남겨두고 안 읽었다.
사실 내 책장엔 뒤에서 70페이지쯤 위치에 책갈피가 꽂힌 책들이 많다. 남겨둔 걸 까먹고 있다가 3년 쯤 뒤에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때의 짜릿함이란!
삶의 짜릿함을 이런 데서 찾는 건 역시 변태적이다.
그러나,
이만한 짜릿함이 없단 말이지.
소설을 보낸 헛헛함을 달래려고 여행갈 때 메려고 산 피터래빗 가방을 개시했다.
그러나 피터래빗 속에 들어가 있기엔 하루키의 얼굴과 자세가 너무 관능적이다.
할배요,
내 짜릿함를 망치지 마소.
결국 뒤집어버렸다.
첫 열흘은 거절당할 드라마 원고를 쓰느라,
나머지 이십 일은 능욕당할 소설을 퇴고하느라,
나의 무용한 3월이 다 갔다.
ps. 말투가 다른 것은 원래 이것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려던 글인데, 쓰다보니 할 말이 많아져서 게시물로 옮긴 탓입니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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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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