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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06. 2024

못된 소설가, 최진영

[노파 서평] <당신 옆을 거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몇 달 전부터 최진영의 소설을 하나씩 읽는 중이다. <원도>에서 시작해 <구의 증명>을 거쳐 <당신 옆을 거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까지. 


그러나 책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언어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러ㅛ다. 문장마다 폭발하는 의미와 감정을, 어떤 언어로도 치환하지 않고, 그저 날 것 그대로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고 싶었다. 


#1. <당신 옆을 거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작가는 ‘세상은 어째서 이따위인가’라는 질문만을 단검처럼 손에 쥐고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내게는 소녀 자체가 단검이었다. 단검을 든 소녀가 주저 없이 내게 돌진해왔다.


소녀는 내 안의 무엇을 찔렀나? 

불안감, 허세, 머뭇거림이다.


안 되면 말지, 없으면 죽지, 하며 대수롭지 않은 척 살지만 실상은 무언가 안 될까 봐, 무언가 없어질까 봐 늘 전전긍긍하던 내 안의 불안과 허세와 머뭇거림을 정확하게 찔렸다. 못된 것.


#2. 정말 중요한 것


최진영 소설의 그 못됨이 좋다. 그 못된 이야기 속엔 언제나 시스템 외부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안 되면 어떡해? 뒤처지면 어떡해? 안달복달하며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이 그들은 시스템 밖에서 걷어차이고 굶주리고 냄새를 풍기며 그저 존재한다. 


그러다 정말 중요한 것을 지켜야 할 순간에, 몸을 일으켜 단검을 들고 돌진한다. 그리고 먹는다. 걷는다. 죽는다. 야생동물처럼. 그런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나 같은 사람한테 불안과 허세와 머뭇거림이 왜 있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게 된다. 


최진영의 인물이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다. ‘너한테 정말 중요한 건 뭐야?’ 공모전 당선되고 강의 따고 그런 거 말고. 단검을 들고 돌진할 만큼 정말 중요한 게 뭐냐고.


그들에겐 답도 늘 한결같다. 사랑이다. 최진영은 늘, 사랑을 말하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를 써왔다고 말한다. 

나는 모르겠다. 사랑이라고 말하자니 따라 하는 것 같고, 명예라고 하자니 그까짓 것 뭐에 쓰나 싶고, 구원이라고 하자니 구원은 이미 받은 것 같다. 그러므로, 없다. 


중요한 것도 없는데 무얼 지키겠다고, 그리 전전긍긍 불안에 떨며 산 것이냐. 

멍청해서 그러지.


내 안의 멍청함을, 단검으로 정확하게 찌르는 책이다.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책은. 


#3. 못된 소설가, 최진영


최진영 작가의 출간 이력을 보면 등단을 한 2006년 이후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기까지, 출간작이 없다. 문예지에 단편 한 편씩을 발표하긴 했으나 그걸로 생계는 어림도 없다.


인터뷰에서도 등단을 하고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했다. 최진영은 그 어려운 시기에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해 최종심에 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최종심에 올랐다고 고료를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버티면서 작품을 고쳐 다음 해에 다시 응모한다. 그러나 이번엔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응모한 소설이 바로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다. 아예 새로 쓴 작품이었다.


최진영은 이 작품이 자신을 계속 쓰는 존재로 만든 소설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등단 작가가 이렇다 할 소득 없이 4년을 버틴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시스템 외부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굽히거나 타협한 흔적 소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들을 토해내는 데 머뭇거림이 없다. 나라면, 이 장면은 너무 세지 않나? 이 단어는 너무 심하지 않나?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심사위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고치고 또 고쳤을 것이다.


그러나 최진영의 글은 그런 게 없다. 써야 할 말, 쓰고 싶은 말을 기어이 쓰고야 만다. 그래서 황현산도 이 소설에 대해 ‘못됐다’는 평을 내렸다. 그러면서 최진영이 오랫동안 ‘못된 소설가’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작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론이 아닐까 싶다.


그의 바람대로 최진영은 점점 더 못된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세계에선 마트에서 고기를 썰며 살아도,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도, 말기암 환자가 되어도, 괜찮다. 그 점이 무척이나 좋다. 나 역시 최진영의 못된 소설을 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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