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서평] "우리 쪽 사람들은 그런 건 소설로도 안 쳐요?"
어제는 장르 소설을 읽어 보았다. 조예은의 <스노볼 드라이브>이다.
장르 소설은 SF 외에는 썩 즐겨보지 않는 편이나 라디오 극본 작가라는 나의 글쓰기의 뿌리로 따지자면 사실 이쪽이 내 친정이다.
몇 달 전에 들었던, “우리 쪽 사람들은 그런 건 소설로도 안 쳐요”라는 말이 지금까지 사무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써왔던 글이 대부분 ‘그런 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건’ 계에서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는 조예은 작가의 소설을 골랐다.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조예은 작가는 2016년에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93년생이라는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굉장한 저력이다. 이번에 나온 신작까지 장편만 벌써 여섯 권째인데, 이런 다작이 바로 장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장르 소설은 문장보다 스토리 중심의 소설이다. 내가 원고지 800매 분량의 소설을 한 달 열흘 만에 쓸 수 있었던 것도 장르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르 소설에서는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휘몰아치는 사건들을 마지막까지 뚝심 있게 끌고 가는 힘이 중요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가독성은 좋지만 거친 표현이나 클리셰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입이 썼다’라든지, ‘그 말을 입안에서 사탕처럼 오래 굴려보았다’와 같은 표현은 꼭 한 번씩 만나게 된다.
스토리가 중요한 글이라서 그렇다. 특정 세계관 안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문장은 기존 문학 표현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재밌으니깐 문장이 약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번 더 풀면, 스토리가 재미없다면, 클리셰 범벅의 매력없는 글 뭉치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는 뜻이 된다.
<스노볼 드라이브>에는 ‘빌어먹을’ 이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모든 게 빌어먹을 눈 때문이었다”라든지 “정말 빌어먹게 좋았다”라든지.
그렇다면 이런 거친 표현이 거슬리지 않을 만큼 스토리가 충분히 매력적이었는가?
사실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도시’라는 설정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또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세밀하게 묘사돼 있으나 사건 자체는 배경만큼 힘이 있지 않았다.
사건에 힘이 없으니 자꾸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듯했는데, 안타깝게도 이쪽은 문장가들의 영역이다. 어딘지 문장이 뚝뚝 부러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엇, 엇! 하며 멈칫하고 말았다.
그러나 10대나 20대가 본다면, 분명 다르게 느낄 것이다. 나는 이런 감성에 공명하기엔 많이 늙었으니깐.
다음엔 <시프트>를 봐야겠다.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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