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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11. 2024

빈틈 있는 소설의 미덕

[노파 서평]  <송곳니>, 김구일




또 다른 장르 소설, <송곳니>를 보았다. 


#1. 작가 김구일

김구일은 경상북도 스토리 콘텐츠 공모전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작가 공모전 등에서 수상했고, 카카오 웹툰 스토리 작가로도 활동한 역량 있는 작가다. 


또 메가박스와 스토리 업체가 합작 개최한 공모전에서도 수상했는데, 그때 응모한 작품을 장편으로 개발한 작품이 <송곳니>다. 


그러니깐, 스토리 전문가의 장르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 재미 포인트

강원도 산골 마을로 전근되어 간 형사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살인, 납치, 마약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내용인데, 낯선 공간에서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데도 가독성이 좋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또 장르가 스릴러다 보니 치고받고, 쫓고 쫓기는 역동적인 장면이 많은데, 인물의 움직임이 눈앞에 그려지듯 능숙하게 묘사돼 있어 확실히 필력이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3. 아쉬운 점 - 사건

다만, 사건이 너무 많았다. 

소설보다는 16부작 드라마에 적합해 보일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해 나중에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감해진다. 


들개가 사람 좀 물려 죽였기로서니, 친구 좀 죽였기로 서니,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하는 정신적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주기 어렵다는 점이다. 


#4. 아쉬운 점 - 여자 마동석의 슬픔

여자도 당연히 괄괄하고 우악스러운 성격의 형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남자 고등학생 무리와 다 대 일로 싸워 일망타진할 수 있는, 웬만한 남자 형사들과 힘겨루기를 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그런 힘과 체력을 지닌 여자는 현실에서 극히 드물다. 

사실 난 들어본 적 없다. 


그러므로 이런 인물을 굳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설정했다면, 그토록 희소한 체격으로 사는 슬픔과 괴로움도 함께 드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그런 여자를 괴물로 여기니깐. 


따라서 괴물로 살아가는 일의 편리와 서글픔의 복잡한 정서가 곳곳에서 묻어나야 하는데, 그게 없다. 


왜냐하면 젊은 남자고 늙은 남자고 죄다 벽으로 밀어붙이고 팔을 꺾어대는데, 누구도 그녀를 괴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여자 마동석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그렇게 열린 사회였나? 


#5. 아쉬운 점 - 냄새 안 나는 들개 소녀

또 다른 주인공, 들개 소녀에게도 역시 마음을 주기 어렵다. 


아이가 산속에서 혼자 몇 년 동안 들개랑 어울려서 살았다는데, 그렇다면 일단 냄새부터 지독할 것이다. 사람이 하루만 안 씻어도 냄새가 고약해지는데, 들개 무리에서 자연인처럼 사는 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계속 학교를 다녔다. 교복도 잘 갖춰 입고. 무엇보다 그동안 무얼 먹었고, 어떻게 산속에서 겨울을 견딘 것일까?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모두 생략한 채 오로지 복수만을 생각하는 복수 기계로 그려놓았다. 이런 인물에겐 공감을 하기도, 위안을 얻기도 어렵다. 


#6. 재밌나?

그렇다면 이 책이 줄 수 있는 마지막 미덕은 재미인데, 재밌나?


재밌다.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기본 톤으로 하고 있고, 들개를 부리는 소녀와 여자 마동석이 악당을 물리치는 사건들이 유려한 필력으로 서술돼 있어 마치 액션 영화를 보듯 쓱쓱 읽기 좋다. 


다만 책은 킬링타임 용으로 적합한 매체가 아니다. 머리를 비우고 두어 시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를 보는 게 낫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책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그 매력이 훨씬 잘 드러날 것 같다.


#7. 빈틈 있는 소설의 미덕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장르 소설을 보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시비를 거는 것인가. 지는 당선된 적도 없으면서. 


원래 그런 것이다. 원래 축구 잘하는 사람은 섣불리 욕을 못하는데, 축구 못 하는 사람은 메시도 욕하고 손흥민도 욕하고 하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두는 게 좋다. 


다만 축구는 욕한다고 내 축구 실력이 좋아지지 않는데, 글쓰기는 다르다. 


다른 소설의 빈틈을 발견하고, 이 빈 곳을 뭘로 채우면 더 좋아질지 고민하다 보면 내 글을 쓸 때도 생각이 더 정교해진다. 


빈틈없는 수작은 줄 수 없는, 헐거운 소설만이 가진 미덕이다. 그러므로 모든 책은 다 훌륭하다. 



***

재밌게 읽으셨으면 밀리의 서재에서 '밀어주리' 버튼을 눌러주세요. 저를 계속 쓰게 하는 버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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