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서평]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
그 유명한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다. 장르 소설을 지나 청소년 문학도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1. 구병모
언젠가 이름만 들었을 땐 50대 중반의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 작가님 사진과 함께 놓고 보니 묘하게 어울린다. 병모처럼 생기셨다. 필명도 참 근사하지. 나도 노파처럼 생겼다.
#2. 허겁지겁 재밌는 것과 정신없이 재밌는 것
최근에 장르 소설을 연달아 읽어서 재미의 역치가 높아졌음에도 정신없이 읽었다.
정신없이 읽는다는 말은 허겁지겁 읽는다는 말과 다르다. 도대체 끝을 어떻게 내려고 그러나? 하는 질문은 같지만, 결말로 가는 과정에서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설은 정신없이 읽는다. 취침 시간도 늦추고 밥 먹는 시간도 놓쳐가면서.
반면 단순히 결말이 궁금할 때는 허겁지겁 읽는다. 장르 소설은 읽다 보면 이제 그만 결말을 알려달라, 하는 시점이 온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띄엄띄엄 읽는다.
인물의 성격과 사고가 도식화되어 있어 결말로 가는 문장을 일일이 꿰지 않아도 특별히 놓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덕에 책을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인데도 두 시간 남짓이면 300페이지 소설을 다 읽는다.
작가 입장에서는 천하의 나쁜 독자 같겠지만, 미안합니다. 독자로선 사건을 담아낼 뿐인 컨베이어 같은 문장은 한 자 한 자 깊게 짚어보지 않습니다. 컨베이어의 역할은 내용물을 매끄럽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또 장르소설의 미덕이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복잡한 사건을 빠른 리듬으로 술술 읽히게 쓰는 것. 그래서 장르 소설은 드라마로, 영화로 수월하게 확장해나갈 수 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 글에는 그 안에 사유가 담겨 있다. 내가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을 언어로 정확하게 해독해 놓은 듯한 날카로운 사유. 그래서 좋은 소설은 영화로 옮기면 그 아름다움이 깨지고 만다.
<위저드 베이커리>에는 그런 사유가 담겨 있다.
#3. 어떻게 이런 소설이 청소년문학상을 받았을까?
그렇지만, 세다.
아동 유기와 스토킹, 자살, 아동 성폭력까지. 판타지 안에 버무려진 것들이 너무 비극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어떻게 이런 소재로 청소년문학상을 받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답은, 청소년 심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심사에서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은 작품이다. 심사평을 읽으니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모험을 무릅쓰고 이 작품을 소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 청소년문학은 새로운 서사를 엮는 튼튼한 힘줄과 청소년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어둡고 섬뜩한 알레고리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모험을 무릅쓰고”의 주체가 어른 심사위원이라는 것을, 책 리뷰를 찾아보고 알 수 있었다.
#4. 만점과 빵점 사이
서점 리뷰를 살펴보면, 평점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아이에게 책을 사주려던 엄마들은 어떻게 이런 소설에 청소년문학상을 줄 수 있는 거냐며 최하점을 주고, 자기가 보려고 산 사람은 최고의 소설이라며 기꺼이 만점을 준다.
나도 처음엔 엄마의 마음이었다. 너무 센데…
그런 다음 나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렸다.
12살에 화장실에서 첫 담배를 피우고,
그 나이에 섹스가 뭔지 모르는 애들은 바보고,
교복을 입자마자 어떤 시발롬이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가고,
어떤 개새끼는 눈앞에서 성기를 흔들어대고 하던 날들을.
윤석열 나이로 하면 이게 전부 11살에서 13살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성범죄자들은 그 이후로도 줄곧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선 아동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해서 가해자의 입에 성기를 물려 저잣거리에 효수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동을 탓했으면 탓했지.
나 역시 어른이 됐다고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혹은 알아야하는지. 너무 놀라지 않기 위해. 또 너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런 잔혹한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책을 오래도록 기다렸을 테니깐.
책 닳은 것 좀 보시라. 대체 얼마나 빌려본 것이냐…
그런 점에서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문학으로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훌륭하다는 평은 아껴두고 싶다. 여전히 걸리는 부분이 있으므로.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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