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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14. 2024

우주 최강 할머니

[노파 단상] 강해지는 법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무엇을 준비하는 건진 잘 모르겠으나, 저는 가능하면 전기와 난방을 쓰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혼자 산속에 들어가 살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단순히 강하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됐든, 저는 최대한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음식은 가능한 만들어 먹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안 켜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틉니다. 물도 아껴 씁니다.


그래서 더우면 에어컨을 홱, 추우면 히터를 홱, 겨울엔 온수를 콸콸 트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겉보기에는 친구가 훨씬 강해보이지만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은 분명 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루한 몸뚱이를 가지고도 강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오후 두 시까지 버틴 후, 역시 오늘도 강했어, 하며 그제야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복도형 아파트에서는 적당히 더운 날엔 다들 문을 열어놓고 삽니다. 겁이 많은 저는 빼꼼히 열고, 겁이 없는 어르신들은 활짝 엽니다. 그러나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트느라 아침만 돼도 모든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 구역에서 언제나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저는, 이미 닫힌 문들을 바라보며 은근한 희열을 느낍니다.

역시, 내가 제일 강자다.


그런데 어젠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옆집 현관문이 여전히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후 두 시, 33도가 넘는 날이었습니다. 


저의 소박하고 변태 같은 기쁨을 앗아간 주인공은 할머니입니다. 얼마 전에 새로 이사 온 분입니다.


팔팔한 중년 주제에 할머니보다도 더위를 못 견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분했지만, 어쩐지 대적할 수 없는 상대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역시 옆집 문은 열려 있습니다.


종말이 오면,

체격이 좋은 제 친구가 제일 먼저 죽고, 그다음엔 제가 조금 더 버티다가 죽을 겁니다. 그러면 할머니가 이 비루하고 유약한 것들, 하고 비웃으며 남은 명을 다 살아내겠지요. 어쩌면 영원히 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국 할머니는 우주 최강이니까요.


저도 저렇게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냥 이대로 늙기만 하면 저렇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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