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서평] 놀랍도록 지적인, 내면의 불구자 - 미시마 유키오
한 달 동안 미뤄둔 <금각사>의 서평을 올린다. 거친 평과 잔인한 사실이 담겨 있다. 험한 생각을 피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글도 피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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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금각사를 읽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1956년에 쓴 작품이다. 사실 금각사보다 미시마 유키오가 훨씬 유명하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하는 것으로.
# 농밀한 사유의 함정
굉장한 명문이고, 사유고, 이야기다. 서사 자체는 단순하다. 중의 아들이 금각사에 행자승으로 들어가 ‘그 일’을 저지르는 것.
‘그 일’도 작가가 고안한 사건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래서 스토리가 신선하거나 재밌지는 않다. 대신 미시마 유키오는 이 단순한 서사를, 어마어마하게 높은 밀도의 사유로 가득 채워 놓았다.
그래서 읽기가 힘들다. 90년대 번역의 불친절함(기계적 번역)도 한몫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역사상 가장 지적인 작가의 농밀한 사유가 400페이지에 걸쳐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 번에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씩 되짚어야 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소설이다. 번역과 내용, 모두.
그러나 금각사의 어휘와 표현이 난해하긴 해도 단순히 작가의 지적 허영심 때문에 이런저런 개념어와 관념어가 나열된 글은 결코 아니다. 모든 어휘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에 정확하게 가 닿아있다.
그래서 이런, 깜짝 놀랄만한 사유와 문장을 페이지마다 발견할 수 있다.
불안은 없어.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건 태양이나 지구나 아름다운 새나 보기 흉한 악어가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거지. 세계는 비석처럼 움직이지 않아.
특히 ‘남천참묘’ 공안과 관련해 미학을 논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지적 능력과 사유의 깊이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단지 내가 그의 지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여 읽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것에 화가 날 뿐이었다.
# 천재 작가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할아버지 대부터 도쿄대 법대 출신에 고관대작을 해오던 집안에서 태어나 본인도 도쿄대 법대를 나왔고, 우리로 치면 행시까지 합격했다.
빛나는 두뇌를 가진 덕에 미시마 유키오는 어려운 내용의 철학적 사유도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막힘없이 펼쳐놓을 수 있었다. 그가 열여섯에 쓴 글을 보고 일본 문인들이 천재가 나타났다며 문학 잡지에 연재할 정도니, 과연 피가 다르다고 하겠다.
그러나 잘 쓴 글이 꼭 재밌는 글은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와! 하며 빠져든다. 이런 문장을 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내 안짱다리와 내 여자는, 그때 세계의 밖으로 내던져져 있었지. 안짱다리도 여자도, 나로부터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어. 실상은 그쪽에 있었고, 욕망은 가상에 불과했지. 또한 보고 있는 나는, 가상 속에 끝없이 전락하면서, 보여지는 실상을 향하여 사정하는 거야.
하지만 4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이 지적이고 의미심장하고 시적이라면, 꽃 한 송이만 봐도,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걸이만 봐도, 세상 모든 의미와 미학적 관념을 토해 놓는 글이라면, 어느 시점에선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비명이 절로 나온다.
단순하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들이 그리워진다. 처음으로 의미와 아름다움이 지겨워졌다.
# 불쾌의 미학
<금각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유려한 사유가 읽는 사람을 결코 유쾌하게 하지 않다는 데 있다. 불구자 둘이서 여자를 농락하고, 미를 농락하고, 결국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파괴하는 이야기에서 삶을, 생의 기쁨을 발견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 일’을 저지른 주인공이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을 때, 당신 같은 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 심각한 여성 혐오
특히 여성 인물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혐오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임신했다는 여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찻잔에 젖을 짜달라는 남자와 그 말을 듣자마자 절간에서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짜주는 여자.
불구자가 자신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도 ‘개처럼’ 순종하며 웃는 여자,
여자의 배를 발로 밟아달라고 청하는 미군과 희열을 느끼며 여자의 가슴과 배를 밟는 남자.
남편과 아들이 자는 옆에서 사촌오빠와 섹스하는 엄마.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면 주인공이 불구가 아니라 작가가 불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시마 유키오는 내면의 불구자다. 그래서 하숙집 딸의 이 말을 읽었을 때, 나머지 한 명은 미시마 유키오일 거라고 확신했다.
말더듬이였나요?” 하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하숙집 딸이 말했다. “그렇다면 병신 셋 중에 둘은 모인 거로군요.”
# 아름답지 않은 결말, 미시마 유키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내면의 불구를 안 듯한 말년을 살았다. 말년이라 봤자 이 책을 발간한 후 15년 정도의 삶이지만.
그는 점점 극단적인 우익으로 변해갔다. ‘방패의 모임’이라는 민병대를 결성하여 무장 투쟁 훈련을 진행했다. ‘미학’에서 미(美)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천황을 올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운명의 그날, 미시마 유키오는 포상을 위해 민병대원 4명과 육상자위대 본부에 갔다. 그곳에서 총감을 일본도로 위협하고 간부 8명을 칼로 상해한다. 총감에게 자신의 명검을 자랑하는데 총감이 칼집에 손을 대서 그랬다. 이후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그는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그러나 미시마의 상상과 달리, 사람들은 <금각사>를 읽을 때처럼 우와! 하지 않았다.
뭐하는 거냐, 왜 밥도 못 먹게 점심시간에 이 난리냐, 작가가 뭘 안다고 나대냐, 하며 야유를 퍼부었다.
매번 칭찬만 듣던 모범생이 처음으로 꾸중을 들을 때 세상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것처럼 미시마 유키오도 야유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할복했다.
그러나 할복 역시 그의 상상과 달랐다. 그것은 너무나 아팠고, 그래서 미시마 유키오는 고통에 몸부림쳤으며, 이 고통을 끝내줘야 할 할복 도우미, 카이샤쿠 역시 한 번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던 탓에 그의 목을 두 번, 세 번에 걸쳐 베느라 그의 죽음은 유례없이 처참해졌다.
겨우 1970년에 일어난 일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45세되던 해였다.
일본 유미주의의 정점에 있던 사람의 결말엔 어떤 아름다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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