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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Sep 30. 2024

보성 4일차. 도인과 관짝 체험

[여자 혼자 하는 여행] 대원사 티베트 박물관

[여자 혼자 하는 여행] [여자 혼자 하는 여행]

* 천공

‘천공’이라는 단어가 한 사람으로 인해 오염이 되긴 했으나, 불교에서 그 말은, ‘하늘이 보낸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스님들이 며칠씩 밥도 안 먹고 수행하고 있으면 하늘에서 음식을 보내 먹인다고 합니다.


템플스테이 첫날, 주지 스님이 저를 보자마자 이 ‘천공’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그저 인사를 드렸을 뿐인데, 스님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보낸 음식을 천공이라 그래. 여기, 천공이 있다고 생각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건 또 뭘까.. 라고 생각하며 그냥 “예~”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엔 스님이 템플스테이를 온 사람들에게 글을 써주셨습니다. 옆 사람에게는 근사한 말을 써주시고는 제겐, ‘하마터면 열씨미 살 뻔했다’라고 써주셔서 어제부터 왜 그러시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 대원사 주지, 현장 스님


현장 스님은 열아홉에 출가하셨습니다. 원래 더 일찍 출가하려고 했으나 삼촌이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출가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그 삼촌은 바로, 법정 스님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장 스님은 혈통부터 남다른 분입니다. 그 유명한 법정스님을 삼촌으로 두시고, 본인은 송광사의 고승들 밑에서 수행하신, 한국 선불교의 적통을 이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백제고찰 대원사에, 티베트 불교 사원과 박물관을 지으신 겁니다. 달라이 라마도 만나시고, 네팔 스님들도 기거하게 하여 대원사를 한국과 티베트 불교 교류의 중심지로 만드신 것이 놀라워서 뵈면 꼭 여쭈려고 했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뭔가, 진리를 보신 건가요?

제 질문을 들으신 스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느닷없이 “전공이 뭐야?”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러시아 문학이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저만 보면 맨 톨스토이와 푸슈킨과 푸틴 이야기만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원체 해박하고 달변이셔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고, 다음에 다시 여쭤야지 하지만 다음엔 연잎에 맺힌 이슬 먹는 법과 상사화의 유래를 알려주셔서 질문을 꺼낼 틈이 없습니다.



사실 이번에 대원사에 가면 뭔가 우주의 진리를 알게 되길 바랐는데, 주지 스님 앞에서는 해맑은 바보가 되어버리고 그 외의 시간은 기쁜 돼지로 되어버려 진리는 개뿔, 바보와 돼지로 사느라 바빴습니다.


스님은 아마 진리 같은 것보다 쉬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고 싶으셨나봅니다.



* 도인

불교를 포함해 명상을 수행의 도구로 삼는 종교에서는 오랫동안 수행하면 특별한 경지에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를 가리켜 ‘도를 깨쳤다’라 하고, 그런 사람을 가리켜 ‘도인’이라고 합니다. 도를 깨치면, 상대의 얼굴만 보고도 그의 과거, 전생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자기 입으로 상대의 과거나 전생을 얘기하는 사람은 덜 깨쳤거나 가짜입니다. 진짜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일단 불교에서는 그걸 교리로 금합니다. 과거를 보는 정도는 수행만 오래 닦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걸로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돈벌이로 이용하여 악업을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장 스님은 아마 도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해맑게 웃는 얼굴 뒤로 득시글대는 불안과 걱정을 보시고, 먹고 사는 걱정 좀 그만하라는 뜻에서 천공 얘기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 글귀 역시 그만 아등바등하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이 글귀가 부적처럼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딱 백 년만 더 사시면 좋겠습니다.


* 죽음 체험과 4만5천 원


티베트 불교는 다른 불교 교리보다 죽음을 훨씬 중시합니다. 어쩌면 삶보다도 더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대원사 티베트 박물관에 가면 이런 죽음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팔자에도 없을 입관체험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자식도 없고, 친척들과 교류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죽으면 납골당에도 묻히지 않고 완전히 태워져 사라질 예정입니다. 관도 아까우니 사체 그대로 태우라고 할 겁니다.



그러므로 이 관은 이번 생에 제가 유일하게 누워보는 관일 것입니다. 의외의 호사라고 생각하며 관에 누워보았습니다. 관내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넓은 관에 누워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가 더 편할 것 같은데, 왜 다들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뾰옹, 하고 핸드폰 알람이 울렸습니다. 입금 문자였습니다. 첫 문장 수업 공고도 안 올렸는데, 선생님 한 분이 일단 입금부터 하신 겁니다.


4만5천 원.

핸드폰 화면에 찍힌 숫자를 보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금부터 하는 신뢰를 받으면서, 한가하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관짝에서 걸어 나오는 데는 4만5천 원이면 충분했습니다.

선생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598475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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