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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Oct 03. 2024

보성 3일차. 대원사 템플스테이

[여자 혼자 하는 여행] 백민미술관, 백련암, 대원사,

 


* 시골의 아침


오늘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날이므로 하루 딱 두 번만 운행하는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었습니다. 여행 동선 때문에 숙소를 하루마다 바꿔야 하는데, 매일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른 아침에 밟는 시골길은 정말 좋았습니다. 맑고 청량한 공기가 살갗으로 생생하게 와닿으니 묘하게 울컥해지는 기분입니다. 새벽 공기는 도시에서도 남다르지만, 시골의 새벽 공기는 그 자체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버스도 속썩이지 않고 제시간에 나타나줬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앱에서 알려준 것과는 다른 버스입니다. 



이번에도 기사님께 육성으로 목적지를 어필하며 시골버스를 이해하려는 허튼 욕심을 내려 놓았습니다. 무지한 도시인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시골 버스는 노선 역시 화려함의 극치입니다. 십자군 전쟁도 이렇게 십자가를 그려가며 진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덕에 4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15분에 걸쳐 갑니다. 

아찔합니다.



* 보성의 소울푸드 

이곳이 바로 보성의 핫스팟, ‘보성 버스 터미널’ 풍경입니다. 보성으로 들어오는 모든 버스는 이곳에서 멈춥니다. 


서울에서 오실 때도 괜히 저처럼 잔머리 굴려서 광주 터미널에서 환승했다가 수수료도 떼이고, 시간도 두 시간 더 기다리지 마시고, 일단 보성 터미널로 오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한 시간 내엔 다 해결됩니다.   


아침 7시 반에 도착했는데도 역전답게 벌써 문을 연 식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눈팔지 않고 미리 봐둔 국밥집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제 먹은 식용유 범벅 김치 볶음밥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 소머리국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뜨겁게 말아준 국밥을 한술 밀어넣자마자 이것마저 없었다면 한국인의 자살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영혼까지 물큰하게 적셔주는 소머리의 맛입니다.


* 산중 모험-백민미술관


오늘 새벽같이 서두른 이유는 템플스테이를 하러 천봉산 깊숙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2박3일 동안 절에만 있을 예정인데 너무 모험이 없는 일정은 심심하니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보았습니다.


그 산중에 미술관이 하나 있다길래 귀한 버스를 내린 것인데, 아니나다를까 이런 인적을 찾기 힘든 미술관은 난생 처음 보았습니다. 


상주하는 직원 한 명 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는 외로운 곳이었고, 도보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수풀에 점령당한지 오래였습니다. 


상주한 직원 역시 누가 올 거라고 생각 못하고 출입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그는 놀라고 나는 경계하여 서로 우울한 인상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전시는 매우 이색적이어습니다. 어떤 건 소박하고 어떤 건 혁명적이고, 느닷없이 러시아물품들이 전시돼 있어 저는 반가웠으나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차로 오는 게 아니라면, 버스를 내려서라도 가보란 말은 차마 하지 않겠습니다. 


* 산중 모험-백련암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백련암이라는 암자입니다.


이곳은 상주하는 이조차 없는, 이미 백년 쯤 전에 야생에 점령당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이걸 보겠다고 이 무더위에 삼십분이나 산길을 헤치고, 뱀이 나오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올라왔던 것인가. 


억울한 마음이 지나가자 급격히 쓸쓸함이 몰려왔습니다. 한때 누군가 애지중지 마음을 쏟았던 곳, 그러나 이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 완전히 버려진 곳. 그런 곳을 볼 때의 마음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 또한 순식간에 백살은 먹은 듯한 기분이 됩니다. 


절에 찾아가는 길에 암자처럼 버려진 민가를 여럿 보았는데, 버려진 시골집을 고쳐서 살겠다는 제 생각이 얼마나 물정 모르는 도시 것의 망상이었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무서운 것보다도 쓸쓸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산골 살기 프로젝트

 사실 이번에 인간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산길을 두 시간 동안 걸으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저는 산골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는 겁니다. 


고작 두 시간 동안 혼자 걷다가 멈췄다가 삼각김밥을 먹다가 벌레와 싸우면서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멀리 맞은편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걸어올라오는 걸 봤을 때, 저는 진심으로 감격하여 “형제여!”하면서 인간적인 포옹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그 강렬한 인류애를 불러일으킨 남자는 저처럼 대원사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사람으로, 마침 방도 제 옆방을 배정받은 이웃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면 코끼리 비명 소리 같은 코골이를 8시간 동안 해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덕에 새벽 3시부터 잠이 깬 저는 그 후론 다시 잠들 수 없었습니다.


낮에는 분명 형제여, 하며 안아주고 싶었는데, 불과 12시간 만에 저는 그의 코를 잘라버리고 싶어졌고, 그새 사람이 지겨워졌습니다. 마음이란 어찌나 얄팍한 것인지요. 

하지만 그대는 너무 했다. 그런 코를 가지고 템플스테이를 오다니..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m.blog.naver.com/nopanopanopa/223596256470?referrerCo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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