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0일차.
한 달 여행 가방을 드디어 다 쌌다.
마지막 2박 3일은 지리산 노고단 산행을 또 계획했으나, 도저히 저 왕뿔 두 개를 한 달간 이고지고 다닐 자신이 없어 울면서 포기했다. 둘레길만 설설 다니다 오기로 내 안의 싸패와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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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은 뒤에 큰 거 빼고 앞에 작은 거 다섯 개가 전부다.
로션 2통과 선크림, 샴푸와 헤어 에센스.
샴푸를 만들어 쓰면 이럴 때 좋다. 머리부터 얼굴 몸, 전부 겸용이라 한 통만 챙기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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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등산복은 입고 가고, 짊어지는 것은 여름옷 위주로 넣었다. 여름은 차림이 가벼워서 좋다. 대신 자주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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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 단출한 대신 약이 많다. 저번에 지리산 갔을 때 약 주머니를 놓고 가서 몹시 화가 났던 관계로 살풀이하듯 챙겼다.
다래끼약부터 온갖 염증약, 그리고 방수 데일밴드까지, 저 주머니만 있으면 땅끝 아니라 우주 끝에서도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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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나의 텃밭 아이들과 이별하는 일이었다.
상추와 루꼴라, 쑥갓을 열 뿌리 이상 뜯어 먹었고, 먹을 수 없는 것들만 남겨서 간이 정수기를 설치했다.
제군들,
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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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일은 냉장고와의 전투였다. 살아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산 기분이다.
내일 아침에 먹을 구운 계란과 방토만 빼고 모조리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승리했다.
냉장고를 이긴 여자라고 불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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