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50분에 집을 나서 오후 4시 40분에 도착했다. 총 8시간 50분의 기록.
모스크바 갈 때 비행기를 9시간 반을 타니까, 러시아에 온 거나 다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즈드라스트브이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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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에서는 왕 구찌 버클 혁대와 금목걸이를 찬 남자를 보았다. 성공한 전라도 남자의 패션이다. 나도 실물로 보긴 처음이라 벅찼다.
숏컷 머리를 핫핑크 색으로 물들인 어머니도 보았다. 핫핑크 어머니 앞에서는 까불면 안 된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분홍색 왕관을 쓴 거라고 할 수 있다.
“아저씨!”하고 앙칼지게 뒷자리 할아버지한테 소리 지르던 아가씨도, 이어폰 끼고 온 버스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구를 보던 빌런도 모두 목포에서 내렸다.
그들이 내린 후로도 나는 4시간을 더 달린 끝에 우주의 끝,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싸구려 방에 짐을 부리자마자 나와서 전복 비빔밥을 먹었다. 바람과 빗속에서 9시간을 달려온 여독이 풀리는 맛이었다.
이래서 손맛 좋은 연인은 떠날 수 없다고 하는 거구나. 긴장으로 바삭해진 영혼이 노곤노곤 풀어지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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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남 여인들은 왜이리 친절한 것인가.
머리 스타일이 너무 예쁘다고, 얼굴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거지 같은 몰골의 마흔 살 여자한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마워요 언니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카페에 와서 생강차 라떼를 한 잔 마시는 중이다.
노트북을 여니 이미 오래전에 이곳에 와 있던 듯한 기분이 든다.
해남에서는
느리고 단순하게.
많이 쓰고 오래 걸어야지.
잘 지내보자, Sun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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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1일차.
고속버스 42,300
숙소 55,000
전복비빔밥 15,000
빵 12,000
커피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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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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