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마지막 수업과 하루키의 퇴고
어제는 아주 바쁜 날이었다. 도서관 수업 마지막 날이었고, 신춘문예 마감일이기도 했다.
새벽까지 원고를 고치고 출력하느라고 잠을 못 잔 데다가 이미 한 달간의 자기 학대로 썩을 대로 썩어버린 얼굴로 겨우 일어나 마지막 수업을 갔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할 때 한 분이 엄청 맛있는 제주도 과자를 싸 와서 모두에게 나눠주셨고, 수업이 끝날 때 쯤엔 다른 분이 포스트잇을 잔뜩 붙인 내 책을 들고 와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또 다른 분은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초콜릿 병정을 선물로 주셨다. 우리나라 60대 남성 중에 가장 다정한 분이 광명시에 살고 계셨다.
그분들이 수업 전날이나 주말에 마트에 가서, ‘다음 수업 때 사람들하고 나눠 먹어야지!’ 혹은 ‘강사한테 선물로 줘야지!’ 하면서 과자와 초콜릿을 고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광명시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다정한 것일까?
역시, 글쓰기 선생은 최고의 직업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하루키가 퇴고에 관해 쓴 글을 읽었다.
”그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 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입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력전’을 온 힘을 다해 치른 것입니다. 그러한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실감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키가 무척 부러웠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실감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원고를 보냈다. 단 한 번도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의 시간을, 에너지를 전부 다 투입해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더 잘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꼬리처럼 남기며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에 대해서도 하루키가 한 말이 있다.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단지 그것뿐입니다.“
쳇, 할배 잘났다!
나도 내년에는 그 실감을 꼭 느껴봐야지! 모조리 다 쏟아내 버려서 내게 남은 건 껍데기밖에 없다라는 실감을.
올해도 쓰느라 애썼다.
이 모양 이 꼴로 살면서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으니 넌 올해도 최고였다.
12월엔 미친 사람처럼 놀아라.
ps.
사진은 토마토와 파프리카.
그냥. 자랑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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