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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해남 8일차. 카페언니와 시골이모들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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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는 카페가 생겼다. 땅끝마을과 노화도, 보길도까지 통틀어 이 집 음료가 제일 맛있다.


또 이 가게 사장님을 제일 좋아한다. 사람이 친절한데 인위적인 게 없고(우리 숙소 사장님은 약간 인위적이다) 말수가 적다. 아주 좋아하는 인간 유형이다.


어제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카페로 달려가 언니가 말아주는 자몽 라떼를 한 잔 마시며 섬에서 먹은 맛없는 것들을 씻어 내렸다. 나는 이미 사장님의 손맛에 중독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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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바로 앞에 있는 ‘카페담다’인데,

거길 한 번만 들른다면 고구마라떼를,

두 번 들른다면 생강라떼를,

세 번 들른다면 그때 쑥라떼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쑥라떼는 그 정도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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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동네 할머니 셋이 카페 옆 평상에 앉아 계셨다. 무료하셨는지 그중 한 분이 카페로 들어오셔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내심 놀랐다. 시골 할머니들은 카페에서 4천 원이나 하는 아메리카노는 못 드시는 줄 알았다.


그래, 평생을 밭에서, 식당에서 허리가 굽어져라 일했을 텐데, 이젠 카페 커피도 마시면서 놀멍쉬멍하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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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머니가 나가시다 말고 “거그 플라스틱 컵 있드만”이라고 했다. 사장님도 나도 뭔 소린가 하여 봤더니, “하나 달라꼬. 두 잔을 셋이서 나눠묵응께”라고 하셨다. 이것이 시골 할매의 기개인 것인가?


사장님은 기꺼이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예 컵 석 잔에 아메리카노를 꽉꽉 채워서 평상으로 가져다드렸다. 크으. 저런 사람이 만드는 음료니까 내가 중독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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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머니들은 음료만 드시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그들은 절대 물배만 채우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입이 심심해진 할머니들은 각자의 집과 가게로 가서 플라스틱 통과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왔다. 그 안엔 상추, 각종 반찬, 회 남은 거, 그리고 소주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커피에 곁들일 다과로 그 자리에서 물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화제로 소주도 함께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마치 물인 양 종이컵에 담아서.


그렇게 양껏 드시다가 보물섬 횟집 사장님이 지나가면 한 입 주고, 진솔이 와이프가 지나가면 한 입 줬다.


마지막으로 카페 사장님이 지나가자 당연히 불러세워서는 마치 마음을 담는 듯 소주를 종이컵에 꾹꾹 눌러 담아 건넸다.


난감하여 사양하던 사장님은 결국엔 마셨고, 얼굴이 벌게졌고, 그 모습을 본 내가 유리 너머에서 큭큭대자 할머니들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깔깔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취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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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들 술 잘 먹지?”

그중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모가 아니라 언니일 텐데.


아무튼 이모는 내겐 술을 주지 않았다. 한편으론 다행이었고 한편으론 서운했다. 소주를 못 마셔 다행이고, 나만 빼고 재밌는 거 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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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페 사장님 남편도 봤다.

괜히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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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오면 반드시 황태껍질튀각도 먹어봐야 한다.


스쿼트를 2백 개씩하고 걸음을 3만 보씩 걸어도 뱃살이 빠질 수 없는 맛! 엄청나게 고소하고 달콤하고 짭조름하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반 봉지에서 멈출 수 있는 맛!


칼로리 표기도 안 돼 있다. 알아봤자 슬프기만 할 테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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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다.

미역 많고 경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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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8일 차

전복해초비빔밥 15,000

황태껍질튀각 10,000

쑥라떼 + 붕어빵 8,500

계란, 샐러드, 찹쌀떡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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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8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108번

스쿼트 150번

걷기 11,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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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86233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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