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와 달마고도
250525 해남 21일 차.
끔찍하게 더웠던 그 날, 도솔암 가다가 더워 먹어서 포기한 미황사를 갔다.
#1. 시골에서 버스타는 법
시골에서 차 없이 여러 날을 지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버스 타기다. 시골버스는 수도권에서처럼 번호만 외워서 타다가는 그 날 공친다. 반드시, 오는 버스는 무조건 잡아 세워야 한다.
네이버 지도가 가르쳐 준 버스 번호만 외고 있다간 오늘 버스 못 탄다. 정류장으로 오는 건 무조건 잡아 세워서 “~가요?”라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물어야 한다. 기사님들이 연로하셔서 귀가 어둡기 때문이다. 맞는 번호라도 그렇게 물어보는 게 좋다. 그래야 기사님들이 그 역을 안 지나치고 내려주신다.
오늘도 아침 7시부터 나와서 232번을 기다리고 있다가 233번이 왔길래 보냈다가 버스 꽁무니가 멀어질 즈음 저걸 탔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네이버 맵을 켰더니 232번 버스 상태가 “운행종료”로 바뀌어 있었다. 끝났다.
그렇게 허망하게 30분 기다린 버스를 놓쳤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땐 30분 정도 더 기다려보는 게 좋다.
네이버 지도가 알려주지도 않는 버스가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세워서 “~가요?”라고 물어보면, 간다고 하면 운이 좋은 것이고, 안 간다고 하면 오늘 하루는 공친 것이다.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아 미황사까지 3시간 만에 도착했다. 차로 가면 30분 걸리는 거리지만 걸으면 7시간 걸리는 거리다. 아주 운이 좋았다.
#2. 미황사.
이곳 주지 스님을 보는 순간 찐이다, 라고 느꼈다. 일흔은 훌쩍 넘어 뵀는데, 불경을 무슨 랩 하듯이 온몸으로 리듬을 타면서 하고 계셨다. 목탁으로 신나게 박자를 맞춰가며. DJ, DJ, pump this party!
이런 예불에는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지, 사람들이 다 급하게 절하고 시주하고 호다닥 나가버렸다. 그러나 이런 무대에 관객이 없으면 쓰나. 대충 눈치 보면서 이때다 싶으면 절하고, 이때다 싶으면 절하면서 리듬을 탔다.
무아지경에 빠진 노승과 리듬 타는 중년 여성.
스님이 흡족하셨는지 불상 앞에 올리라고 향도 두 개나 주셨다. 그런데 한 번도 절에서 소원을 빈 적이 없어서 향이나 등 같은 것을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향을 받을 때도 무슨 담배 받듯이 검지와 중지 사이로 받아서 꽂는 것도 십 일 자로 이상하게 꽂았다. 그 이상한 짓을 아주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했다. 그래서 스님이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나 보다.
숙소에 와서 찾아보니 이것도 지극한 예법으로 행해지는 일이었다.
흠...
몰라서 그랬어요, 용서해주세요.
미황사는 지금 수리 중이라 어수선한데, 그래도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한 시간 만에 또 만난 스님은 “가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네 글자가 너무 우아하고 좋았다.
안 가요, 또 올 거예요.
#3. 달마고도
2017년에 개발된 트래킹 코스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려고 전부 사람 손으로만 닦은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데크나 나무 계단 같은 게 없고 산의 원재료인 돌과 흙만으로 만든 길이 18km 가까이 펼쳐져 있다. 그 길을 걸으면 정말 산에 안긴 듯한 느낌이 든다.
미황사에서 시작해 미황사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한 바퀴 다 도는데 7시간이 조금 안 걸린다고는 하나 그것은 등짐 없는 프로들의 이야기고, 나처럼 한 달 등짐 어깨에 짊어지고 걸음마다 사진 찍고 다니는 사람은 절반 도는 데만도 너덧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중간에 하산을 해야 했는데, 길이 좀 곤란했다. 중간에 길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갑자기 나 혼자 숲속에 떨궈진 것 같아 짐승처럼 겁을 잔뜩 집어먹고 관목숲을 마구 부러뜨리며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마을까지 30분 거리기에 망정이지, 공포로 돌연사할 뻔했다. 산에서 길을 잃는 것은 정말 무섭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와 바닥에 깔린 낮은 식물과 낙엽이 주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굉장히 크다.
그러나 이 꽉 깨물고 돌진하면 다 빠져나갈 수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개 네 마리가 미친 듯이 짖으며 달려드는데 그마저도 반가웠다.
나 진짜 죽을 뻔했어, 이 망할 것들아.
#5
산행을 하면 이상하게 중국집 음식이 당겨서 해남읍에서 맛집이라는 중국집에 갔다. 식사까티 시키면 분명 남길 것 같아 고심 끝에 표고탕수육 한 접시만 시켰다. 맛은 기가 막혔으나, 짬뽕이 땡겼다. 짬뽕 없이 먹기엔 조금 괴로웠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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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21일 차
숙소 55,000
샌드위치, 육포 등 8,700
표고탕수육 20,000
방울토마토, 빵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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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21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108번
스쿼트 50회
걷기 27,5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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