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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등산 초보, 북한산 가는 법

백운대 최단 코스, 등산 준비물

by NOPA


어제(11/4)는 백운대에 올랐다. 고생할 게 싫어서 계속 둘레길만 돌았더니 더 가고 싶어졌다.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도 가까워지나보다.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백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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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계곡이 아무리 좋아도 꼭대기가 보이면 저길 오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 백운대 최단 코스

백운대를 가장 빨리 가는 코스는 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양주 37번(혹은 704번)을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려서 시작하는 길이다. 발이 빠른 사람은 두 시간이면 오른다.


그러나 나처럼 등산 초보거나 체력이 없거나 다리가 짧은 사람은 빨리 가면 안 된다. 서울에 있어서 만만하게 여겨지는 거지, 북한산은 매년 한 두명씩 사람 잡아먹는 산이다.


또 양주37번을 탈 땐 8시 전에 타거나 9시 후에 타는 게 좋다. 그 사이에 타면 군인들 출근하는 시간이라 서로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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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7시에 탔는데, 8시 50분에 입구에 도착한 건 좀 그렇다. 옛날에 은평구에 살 때가 좋았지


* 산행 복장

뭘 입어도 상관 없지만 땀 배출 잘 되는 폴리 소재와 쫙쫙 늘어나는 쫀쫀이 바지가 좋다.


그래서 여름엔 요가복에 바람막이 걸치는 게 최곤데, 지금처럼 날이 추워지면 하나씩 벗었다가 입었다가 할 수 있도록 짚업과 조끼를 여러 개 걸쳐 입는 게 좋다.


산 아래는 춥고 등산 중엔 덥고 정상에선 아주 춥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가을엔 등산 가방도 넉넉한 크기로 가져가면 옷들을 쉽게 쑤셔넣을 수 있다.


최악의 옷 소재는 면이다. 산행 중엔 땀에 젖어 무겁게 달라붙고 정상에선 차갑게 식어 얼려 죽인다.


옷이야 면 소재만 피해서 자유롭게 입으면 되지만, 신발은 반드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물론 산에 가다보면 맨발 아저씨들을 종종 보게되나 그들은 우리와 종이 다르다. 우린 일반 운동화만 신어도 미끄러져 죽을 수 있다.

KakaoTalk_20251106_094233518_04.jpg?type=w1 내가 멈춰 서서 사진을 찍자 뭐 찍어요? 하면서 시크하게 지나가던 맨발의 아저씨. 그대의 정신나간 맨발을 찍었지.


* 보리사와 약수암

북한산 입구에서 무장애 탐방길로 쭉 오르면(우측 도로로 가지말고 이 길로 올라야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 길로 오를 수 있다) 보리사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워밍업, 여기서부터가 진짜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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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지나서 안쪽 길로 오르면 이런 돌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사실은 보리사 윗길도 워밍업이고, 진짜 산행은 약수암부터라고 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8백 미터밖에 안 남았다고, 조금만 오르면 금방 정상에 닿을 거라고 희망을 품겠지만, 여기서부터 악마의 길이 시작된다. 바위도 지리산 바위만큼이나 크고 계곡도 없고 그악스럽기 이를 데 없는 길이 정상까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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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106_094233518_08.jpg?type=w1 약수암에서 바나나를 먹으며 전의를 다질 때 나를 보며 전의를 다지던 고양이. 북한산엔 고양이가 많다


꾸역꾸역 오른 끝에 암문이 보이면 진짜 정상에 근접한 것이다.

이제부턴 화강암 돌산의 표독스러운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개도 가는 길이다. 사람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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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다.

정상 코 앞에서 대기가 좀 있으므로 여기서 다 왔다고 치자. 월요일 아침에도 이 정도 줄이면 주말엔 30분씩 기다린다고 보면 된다. 무슨 줄이냐면 백운대 정상석 태극기 옆에서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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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도 뒤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찍어주니 걱정말 것.

약수암에서 15분 쉰 것을 빼면 오르는데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발이 빠른 사람은 2시간도 안 걸리던데, 빨리 올라와봤자 빨리 내려가기 밖에 더하겠나. 빨리 가서 뭐하려고?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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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그제야 풍경이 보인다. 좌측이 사람 잡아먹는 주범인 인수봉, 우측 너럭바위 앞이 만경대. 백운대까지 요 셋을 합쳐 삼각산이라고 고한다 .


사람들이 위험한 것도 모르고 저 경사진 데 앉아 있다고 실컷 잔소리를 해놓고 제일 앞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누가 앞에서 알짱거리면 성가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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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준비물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스티로폼 등산방석(다이소 천 원)과 맥심, 그리고 뜨거운 물은 필수로 챙겨오는 는게 좋다. 가을에 해발 8백 미터는 너무나 추워서 뜨거운 믹스커피가 제격이다.


다들 옷 벗어던지고 반팔로 올라왔다가 너럭 바위에 앉은지 3분도 안 되어 코를 훌쩍거리기 때문에 이곳은 바람소리와 사람들 코 들이키는 소리로 요란하다.


사람들 코 먹는 소리를 들으며 초코 머핀과 맥심 커피와 초콜렛 다섯 개를 뜯어먹었다. 그렇다, 나는 초콜릿을 죄책감 없이 먹기 위해 산에 온다. 이 날 다 먹은 초콜릿 수가 10개는 될 걸..


* 사람, 오리,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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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 멋진 곳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찍어주고 누구는 바위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 아무도 못 본 줄 알았지? 내가 보고 하늘이 보고 북한산이 보고 당신 양심이 봤다. 아, 양심 없나?


이건 광합성하는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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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광합성 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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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매달려야만 사는 사람들

KakaoTalk_20251106_094534561_11.jpg?type=w1 확대해 보면 사람이 매달려 있다


12시 15분에 하산을 시작하여 2시 11분에 입구에 도착했다. 나보다 조금 빨리 가는 커플이 있길래 그들을 하산 메이트 삼아 미친듯이 따라내려왔더니 2시간도 안 걸려서 내려왔다.


그들은 내가 어지간히 성가셨을 테지만 나로서는 함께 산행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잘 가요,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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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북한산 갈 때 장갑은 필수다! 꼭대기는 쇠 손잡이을 붙잡고 팔힘으로 올라가므로.


* 등산화

올해 3월에 지리산에 가려고 산 등산화가 1년도 안 되어 다 헤졌다.


너는 나를 눈 쌓인 노고단에 데려다줬고, 속리산 문장대에도 데려다줬고, 우리는 달마산 능선도 함께 탔으며 두륜산은 두 번이나 올랐지. 애썼다. 새 놈을 들였으니 너는 이제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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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사이즈를 파는 곳이 없어서 결국 아동화를 샀다. 사십인데 아동화라니. 자존심 상한다. 마음 상했으니 나를 아동처럼 조심스럽게 대해줘.


등산화는 비싼 것보다 발 크기에 딱 맞는 것을 사는 게 중요하다. 5미리 큰 거 샀다가 하산할 때 발이 자꾸 앞으로 쏠려서 힘을 잔뜩 주고 걸었더니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방수 기능은 필수고, 돌부리에 발목이 꺾이는 일도 많으니 기왕이면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컷으로 장만하는 게 좋다.


그러나 이런 저런 거 말하면 등산복 비싸서 못 간다는 사람이 생긴다. 좋은 거 다 필요없고, 등산화(위의 두 켤레 다 3만원 대임)와 땀복과 보온병만 있으면 된다(당연히 물병도 있어야 함).

날이 추워진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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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06387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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