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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어찌해야 하나..

층간소음, 첫인상, 일산 도서관

by NOPA


어젠 윗집 아이들이 자정이 다 되도록 뛰어다니는 바람에 침대에 누운 지 한 시간이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층간소음에는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동이 함께 있어서 아이들이 내 몸 위로 발을 구르는 기분이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럼 난 다음 날 아침을 열정적으로 보낸다. 문과 창을 쾅쾅 여닫고 법문을 크게 틀어놓는다. 새벽 다섯 시 반부터 대략 한 시간 동안 왁자하게 아침을 연다. 이렇게 안 하면 아이들이 뛰어도 괜찮은 줄 알고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층은 무슨 죄냐 하겠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실내 흡연을 한다. 이 아파트 6호 라인에는 죄다 죄인만 산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깍두기와 버섯 장아찌와 리코타 치즈를 만들었다


광란의 밤을 보낸 날은 아이들도 밉고 부모도 밉고 온통 미운 감정이 들어 기분 전환을 하려고 카페에 간다. 그런데 카페에 온 지 30분도 안 되어 낯익은 얼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윗집 엄마와 아이들이었다. 이런.


나 역시 아침 소음을 일으킨 죄인이기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고, 윗집 엄마 역시 애써 나를 못 본 척하며, 그러면서도 무지하게 서로를 의식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했다.


윗집 엄마는 아이들과 색종이를 접었고 나는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흘깃 보니 모르는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아, 사촌 언니가 놀라와서 애들이 어제 더 흥분한 거였군.


엄마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다뤘고, 아이들도 엄마를 잘 따랐다. 역시. 천장소음으로 접하는 발굽 달린 괴물은 가상의 개념이고 실제 아이들은 귀엽기 그지없다.


아이 엄마도 선량한 사람 같다. 그저 뛰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할 뿐이다. 그럼 아빠는 어디 갔나? 아빠도 애들을 단속해야지. 그러나 그는 요즘 보기 드문 외벌이 가장이다. 그래서 남매를 키우면서도 방 두 칸짜리 집을 십 년 가까이 벗어나지 못하고 늘 피곤에 전 얼굴을 하고 있으니 이해를 해줘야 한다.


제길. 이래서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언제나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은 내 쪽이 되어버리니.


그치만 저도 저를 어쩔 수가 없어요. 저녁 내 소음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잠 좀 자려고 누우면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소음과 진동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나 자신의 복수를 위해 광란의 아침을 다짐하게 된단 말이지요.


어찌해야 하나.

그대들 아침을, 나는 밤을 참는 수밖에. 아이들이 한국의 가혹한 입시 제도에 휘둘려지기 전까지는.


*

감사합니당�

요즘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든다. 이런저런 계기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나를 처음 보고 하는 말은 주로 “여리여리”다. 나는 그 말이 체구가 작다, 의 에두른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한 달 새 세 번이나 그 말을 듣게 되니 싸한 기분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다.

“그것은 제가 약해 보인다는 뜻인가요?”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다. 지금껏 체구는 작아도 단단한 짱돌 같은 인상을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초식동물이라니! 그래서 거리의 모든 미친 자들이 나만 보면 시비를 못 걸어 안달을 냈던 거군.


어찌해야 하나.

구텐탁 씨를 정수리에 꽂고 다니는 수밖에.


그러나 나는 구텐탁 씨를 꽂고 다니는 대신 온갖 귀여운 것들을 손과 가방에 달고 다니는 중이다. 첫 문장으로, 블로그로 알게 된 분들이 선물한 것들인데, 원래 액세사리를 안 하는데도 요즘은 이런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좋다. 이걸 만든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가? 역시 쓸모없는 것들은 사람을 이토록 기쁘게 한다.

귀여운 게 좋은 나이


그러나 귀여운 것들을 차고 다니는 초식동물이어도 건들면 무니까 미친 자들이여, 시비 걸지 말고 그냥 지나가소.


*

일산도서관 수업은 아주아주 흡족하게 끝났다. 고양 시민분들은 너무나 다정하여 마지막 수업 시간에 왜 수업을 두 번만 하는 거냐고 너무 짧은 거 아니냐고 한 마디씩 던지며 내 면을 세워주셨고, 대신 사서 선생님이 매우 난감해했으나 이것은 도서관의 문제가 아니라 허구한날 출장비를 써대면서도 도서관 예산은 줄이는 시정의 문제고, 그런 시장을 뽑은 것은 또 고양 시민분들이니 결국 업보가 돌고 돈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어찌해야 할까.


이건 좀 쉽다. 다음 번시장은 출장을 작작 가는 사람을 뽑으면 될 일이다.


*

이것은 이번 달 칼럼.

해남 가는 버스 안에서, 숙소에서, 대흥사 피안의 방에서 졸음과 싸우며 정신없이 썼다. 내 여행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아니고 그냥 애증의 칼럼).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86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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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m.blog.naver.com/nopanopanopa/2240916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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