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파에세이] 경기도 도서관과 서울 도서관

글쓰기 수업 분위기 차이

by NOPA

11월은 해남 두 달 살이의 후유증을 견디기 위해 바쁘게 보냈다.


둘레길을 걸었고, 북한산을 세 번이나 갔고, 그중 한 번은 능선을 종주했다. 강의도 했고, 신춘문예에 마지막으로 낼까 말까 고민하며 틈틈이 개구리를 손봤고,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났고, 첫 문장 문우들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해남에 가는 중이다. 흑석산도 가고 템플스테이도 할 것이다. 해남으로의 모든 애정이 시작된 곳이 두륜산 대흥사인데, 거기서 지내면 내가 출가를 할 만한 깜냥이 되는지 살펴볼 요량이다.

KakaoTalk_20251122_104513658.jpg?type=w1
KakaoTalk_20251122_081900197_01.jpg?type=w1
해남 들꽃. 하루 사이에 상고대가 생겼다. CG 처리한 줄 알았다.

*

생계가 중요하다며 픽업을 안 올 것처럼 굴던 해남 아저씨는 보아하니 어제 장흥까지 나가서 장을 봐온 것 같고, 답장도 안 주고 서운하게 굴던 친구도 아예 하룻밤을 자고 간다고 했다.


물론 남의 집이다. 나도 남의 집에서 머물면서 친구까지 재운다니 저런 민폐가 있나 싶겠지만, 시골은 문명과 다른 법칙으로 움직인다. 다음에 내 집 한 번 비워주면 되는 일이다. 물론 해남에 내 집이 언제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냥 그런 것이다. 이게 시골 사람들이 말하는 품앗이인 것 같다.


해남에 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경계를 흐리는 이런 근본 없는 시골 법칙을 제법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남의 집 살림도 죄다 훔쳐갈지 모른다(시골에선 절도의 개념도 도시와 사뭇 다르다. 그냥 가져가는 것이지 절도가 아니다.)

KakaoTalk_20251122_081900197.jpg

*

어제는 일산의 한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내가 왜 반포도서관에서의 잔잔한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수강신청은 진작에 찼고, 대기도 길었고, 아침 일찍 와서 그냥 들으면 안 되냐고 조르던 대기자가 두 명이나 있었고, 수업이 끝난 후엔 굳이 와서 수업이 무척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두 명은 예전에 첫 문장 수업을 함께 듣던 젊은 부부였다. 이래서 내가 버릇이 나쁘게 든 것이다. 도서관 수업에선 원래 다 강사를 이뻐하는 줄 알았지.


KakaoTalk_20251122_104513658_04.jpg 부부의 선물. 이렇게 사랑을 받으니 내가 버릇이 나쁘게 들었다. 고맙습니다ㅠ

*

그 부부는 첫 문장 수업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내 글을 읽고 간간이 댓글을 달아주며 소식을 전했고, 나는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사진으로 그분들의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몰래 흐뭇해했는데, 그렇게 3년 동안 사이버 세상에서 글로 교류하던 정신과 영혼의 친구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신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의 감동이란!


이럴 때마다 몸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리 오래 글을 주고받아도 직접 한번 보고 말하고 호흡하는 생동감에는, 그러니까 몸이 주는 감동에는 미치지 못한다.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토록 좋은 것!


며칠 전에도 첫 문장에서 글로만 알고 지내던 분을 직접 뵀는데, 머리 색부터 가방을 꿴 끈까지, 나는 그분의 독특한 미감에 완전히 매료 됐고, 헤어질 때 내게 손 키스를 날리는 모습엔 그저 아찔해졌다. 마흔 넘은 사람이 저렇게 상큼해도 되는 건가. 불법 아닌가. 저런 생기는 결코 글로는 전해질 수 없는, 오직 몸으로만 육박해오는 것인데, 나는 이 한순간을 위해 저분의 글을 반년간 읽었나 보다.


*

문득 사람들이 글로 본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처음에 존댓말로 글을 썼을 땐 나를 너무 점잖고 선량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그럼 내가 너무 사기를 치는 것 같아서 반말로 바꿨는데, 이젠 나를 적당히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주려나?


확실히 글보다 몸으로 나를 먼저 만난 사람들은 나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경계하고, 날카롭고, 시끄럽고, 불평불만이 심해서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먼저 보여주고 몸은 나중에 드러내는 전략을 쓴다. 비록 내 육신은 되바라졌지만 정신까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상한 거지, 나쁜 게 아니에요, 글 봤잖아요오오.


KakaoTalk_20251122_074519314_03.jpg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082178963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도서관강의 #도서관글쓰기수업 #쉽게 쓰는법 #흑석산 #대흥사 #템플스테이 #해남여행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노파에세이] 쓸모 없는 것들이 인간을 구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