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3일, 고양신문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단어여서 뭐지? 하며 밤새 뉴스를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내심은 그곳까지 뛰어가기 귀찮고 무서워서, 내가 겁쟁이처럼 뉴스만 붙들고 있는 사이 누군가는 국회로 뛰어갔고, 장갑차 앞에서 누웠고, 총을 잡았고, 군인들을 막아섰다.
그 다음날부터 나도 핫도그를 사 들고 국회 앞으로 달려가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러는 사이 봄이 왔고 그는 파면됐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지리산으로, 속리산으로, 해남으로 망아지처럼 쏘다녔다. 계엄이 없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활동을 원없이 한 듯하다.
어제는 내란 1주년 기념이라는 명목으로 고양신문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불참한 한 명이 아무래도 우리와 만나기 싫어하는 것 같다느니, 에이, 그런 것은 아닐 거라느니, 계엄과 아무 상관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꼬치를 먹고, 오이를 먹고, 어묵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1년 전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까마득하여 오래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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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 계엄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실패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했을 테니 다음엔 계엄령 따윈 내리지 않고 바로 언론사를 접수하고 인터넷을 끊고 국회를 장악하고 1등으로 달려온 시민에겐 본보기로 총알을 박아넣어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끝낼 것이다.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현백을 3만 개나 주문했다는 데도 대선에서 40%의 사람들이 그 당을 찍고, 2030남성은 70%가 그 당을 지지하고, 사법부가 내란 세력을 단죄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반인들과 다르다고, 우리만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법부에 꽤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독재자가 배양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돼, 하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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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년의 경험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다. 아마 한국 근대사에서 시민들이 이긴 최후의 사건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거기 있었어. 내가 이겼어. 정치 얘기 좀 그만하라고? 어쩜, 내가 구한 나라에서 너는 충실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구나. 그래, 그러라고 우리가 그 엄혹한 겨울에 벌벌 떨면서 거기 있었어, 우리가 지켜낸 게 너의 작고 무관심한 일상이었지.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 다음에 우리 같은 사람은 다 죽을 테니까. 그땐 누가 지켜줄까, 너의 작고 소중하고 지독하게 무관심한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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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리코타 치즈를 만들며 나만의 소시민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중이다. 남은 우유가 먹기 싫다면 버리지 말고 리코타 치즈를 만들자.
- 리코타 치즈 만드는 법
우유에 소금 한 스푼 넣고 끓인다.(1L 기준)
기포가 올라오면 식초(혹은 레몬즙) 세 스푼 넣고 세 바퀴 저어준다.
중불로 줄이고 7분 정도 그대로 더 끓인다.
몽글몽글해진 우유를 채반에 부어 유청을 내리면 끝.(면포에 걸러도 되는데 너무 촘촘해서 잘 안 걸러짐)
주의. 나처럼 수저로 유청을 너무 짜대면 치즈가 딱딱해지고 바스러진다. 짜대지 말고 그냥 내리자.
우유 600ml로 했는데 100g정도 나왔다.
맛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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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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