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1년을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하찮은 부심을 부려보자면…
유약한 것들. 이것은 모스크바 혹한이 아니다. 모스크바 추위라는 것는 기온에서 오는 게 아니다. 겨울의 모스크바는 영하 3도만 돼도 뼈가 시큰하고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픈, 선명하게 느껴지는 불쾌감이 있다.
그곳 추위는 칼침 같아서 사람을 마구 쑤시며 들어오기 때문에 반드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능하면 털 종류로 무장하는 게 좋다. 특히 모자를 쓰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괜히 그 나라에 모피 모자가 유행한 게 아니다.
오늘은 일산도 체감 영하 20도라고 해서 설렌 마음으로 집밖을 나섰는데, 말갛게 추웠다. 얼굴에 닿는 공기가 쾌청했다.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만하면 산뜻한 날씨지.
어제는 한밤 중에 아파트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관리실 직원은 우리집 경보기 오작동을 의심했고, 밤 11시에 나 혼자 사는 집으로 들어와 방마다 돌아다니며 경보기 오작동을 점검했다.
우리집 화재 경보기는 멀쩡했고, 맨발로 돌아다니던 아저씨는 몹시 발 시려워했다. 당연하다. 아직 보일러를 안 튼 집이니까. 그래서 한밤중 낯선 이의 방문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얼른 나가고 싶을 테니까. 겨울에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유약한 아저씨.
달콤한 한파.
오라, 모스크바 한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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